'스승' 앞에서 몸낮춘 '제자', 반드시 우승해야 하는 스승

최종수정 2015-03-19 07:44

2014프로배구 V-리그 남자부 삼성화재 고희진과 신치용감독, OK저축은행 강영준과 김세진감독, 한국전력 후인정과 신영철감독이 18일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열린 포스트시즌 미디어데이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청담동=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14~2015시즌 프로배구 정규리그의 문이 닫혔다. 이젠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향한 발걸음을 옮길 시간이다. 마지막에 웃어야 진정한 승자가 된다. 팬들은 챔프전 우승 팀을 기억한다.

포스트시즌(PS)에 진출한 팀들의 전력은 정규리그를 통해 사실상 거의 드러났다. 그러나 PS는 또 다른 세상이다. 단기전이다. 변수에 희비가 엇갈릴 수 있다.

PS에 진출한 사령탑들이 코트에서 충돌하기에 앞서 마이크를 잡았다. 18일 서울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진행된 PS 미디어데이가 무대였다.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사령탑들의 농담 속에는 뼈가 있었다. 불꽃튀는 설전은 긴장감을 감돌게 했다.

배구 팬들은 최근 재미있는 속설을 만들어냈다. '프로배구 남자부는 7개 팀이 펼치지만, 결국 삼성화재가 우승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삼성화재는 4시즌 연속 정규리그 우승과 7시즌 연속 챔프전 우승으로 한국 프로배구사를 새로 쓰고 있다. 매 시즌 삼성화재의 대항마로 평가됐던 팀들은 '고양이 앞에 쥐'였다. 이번 시즌 PS도 같은 양상이 펼쳐질까.

일단 PS 진출 팀의 그림이 달라졌다. 현대캐피탈과 대한항공이 PS행 티켓을 거머쥐지 못하고 OK저축은행과 한국전력이 삼성화재의 독주를 막기 위해 도전장을 내밀었다.

누가 챔프전에 올라가도 '사제대결'이 성립된다. 공교롭게도 김세진 OK저축은행 감독과 신영철 한국전력 감독은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 밑에서 배구를 배운 제자들이다. 김 감독과 신영철 감독은 '스승' 앞에서 몸을 낮췄다. 김 감독은 "두 팀보다 나은 점은 댄스밖에 없는 것 같다"며 재치있는 입담을 과시한 뒤 "개인 기술, 경험도 부족하다. 딱히 내세울 건 없다"고 밝혔다. '신치용 감독에게 엄포를 놓아달라'는 질문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김 감독은 "신치용 감독은 내가 엄포를 놓을 대상이 아니다. 지금은 한국전력이 두렵다. 챔프전에 진출한 뒤 인터뷰의 기회가 있을 때 엄포를 놓겠다"고 말했다. 신영철 감독도 "삼성화재와 OK저축은행은 우리보다 강팀"이라고 설명했다.

겸손의 미덕을 보인 제자들의 발언에 스승의 마음은 어떨까. 챔프전 우승을 해도, 못해도 행복하단다. 신치용 감독은 "김 감독은 1991년 내가 국가대표 코치를 할 때 처음 만났고, 신영철 감독은 한국전력 코치 시절에 만났다. 당시 내가 잘한 것이 아니다. 두 감독들이 잘해서 내가 도움을 많이 받았다. 오늘날의 삼성화재를 만든 주인공들이다. 고맙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만약 챔프전에서 패하더라도 이왕이면 오래 알게 된 사람에게 지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지더라도 웃으면서 물러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행복하다"고 했다.

신치용 감독 특유의 엄살은 빠지지 않았다. "세터와 외국인 선수는 두 팀에 밀리지 않는다. 센터는 비슷한 전력이고, 나머지 자리는 밀린다. 한국전력이 만만치 않다. 날개 공격들이 좋다. 서브리시브가 문제가 되겠지만, 서브리시브가 되지 않아도 가장 좋은 공격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서 김 감독에게는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건넸다. "김 감독은 PS에 진출한 감독들 중 키도 가장 크고, 잘생겼으니 그걸로 밀고 나가라." 그러자 김 감독은 "배구와 관련된 대답을 하라"며 스승에게 귀엽게 도발했다.


승부의 세계는 냉정했다. 신치용 감독은 순순히 제자들에게 챔프전 우승을 내줄 마음이 없다. 제자들에게 이번 시즌까지만 자신에게 우승을 양보하라고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 이유가 있었다. 신치용 감독은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 두 감독은 이 정도까지만 하고 올해까지 삼성화재가 우승하는 걸로 하자. 큰 딸이 4월에 결혼한다. 우승하고 결혼시켜야 되지 않겠냐"며 웃었다.

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