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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회의 강스파이크]'빈익빈 부익부'·검은돈 둔갑하는 학교지원금, 유소년시스템 구축으로 풀자

김진회 기자

기사입력 2017-09-13 03:53



지난 11일, 한국배구연맹(KOVO) 여자 신인 드래프트가 끝나자 현장은 울음바다가 됐다. 프로배구 여자부 6개 팀에 1~4라운드 지명은 고사하고 연습생 신분인 수련선수로도 뽑히지 못한 선수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40명의 고졸 예정 선수 중 16명밖에 뽑히지 않은 건 예년과 비교할 때 비슷한 수준이었다. 단지 신청자가 많아 취업율이 떨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1라운드 지명 이후 2~3라운드 지명 줄포기는 분명 구단들이 무언가 부담을 느끼는 부분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뽑을 자원이 부족하다." 구단들이 내놓는 현실적인 얘기다. 또 드래프트 시기도 기존 선수 등록을 마친 상태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샐러리캡(13억원) 문제도 신인 선수 선발에 적잖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다만 가장 본질적인 문제로 돌아가보자. 재능 있는 선수 부족이 왜 발생했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많은 이유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과도하게 책정된 학교지원금이다.

우선 여자부의 경우에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하다.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10여년간 여자부 구단들이 학교지원금이란 명목으로 배출학교(초·중·고)에 지원한 금액은 총 약 88억원이다. 남자부(약 120억원)와 합치면 200억원이 넘는 돈이 지원됐다. 그런데 여자부에선 3~4개 학교가 돌아가며 지원금을 독식하는 모습이다. 물론 좋은 선수를 육성한 대가는 규정에 따라 지불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의심해봐야 하는 점은 이 지원금이 과연 선수를 위해 제대로 쓰여지고 있는가 여부다. 배구계의 한 관계자는 "이 지원금이 선수들을 위해 쓰여지고 팀을 위해 쓰여져야 하는데 어떻게 운영되는지는 제대로 알 길이 없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학교 측에선 배구단 운영비를 지원금으로만 충당하려 한다. 학교 자체 예산에다 드래프트 지원금이 더해져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하는데 지원금으로만 운영된다면 제자리 걸음이 될 수밖에 없다. 이래서 무슨 발전을 이룰 수 있겠는가"라며 성토했다.

지난 7월 여자부 구단들은 이번 드래프트를 앞두고 여고감독협의회와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구단들은 학교지원금의 불투명한 운영을 꼬집고 미배출 학교와 초등학교, 중학교에 대한 지원금 비율을 늘리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다수의 선수를 배출하는 학교 감독들이 펄쩍 뛰며 난색을 표했다는 전언이다. 때문에 KOVO는 현행 70%의 고교 지원금 10% 삭감을 내년부터 시행할 수밖에 없었다.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는 KOVO는 투명한 학교지원금 지출을 위해 지난해부터 학교 측에 증빙서류 제출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수사권과 감사권이 없는 KOVO는 학교 배구단의 운영 예산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현실적 제약에 막혀 형평성보다는 투명성에만 초점을 맞춰 지원금 지출 현황을 관리할 뿐이다. 맹점은 또 있다. 배구부가 있는 학교는 시도교육청 지원금도 별도로 나온다는 것이다.

학교지원금이 겉으로는 투명해졌을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일부는 검은 돈으로 거래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불법인 스카우트비로 사용되고 있다. 복수의 관계자는 "여고 배구단은 연간 5000만원 정도면 충분히 운영이 된다. 여기에 초등학교와 중학교까지 일괄 운영되는 곳을 봐도 1억원~1억2000만원 정도면 충분하다. 남은 지원금이 암암리에 스카우트비로 활용되고 있다는 얘기는 배구계 관계자들이 묵인하는 부분이기도 하다"고 귀뜸했다. 결국 두둑한 지원금을 받은 학교는 좋은 선수를 스카우트해 선수장사를 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남자부 구단들의 불만은 더 커지고 있다. 1, 2라운드에서 두 명의 선수를 뽑으면 입단금을 비롯해 연봉과 학교지원금을 합쳐 약 5억원을 써야 한다. 입단금과 연봉은 선수에게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학교지원금이 너무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1라운드 1, 2순위 지원금이 1000만원이 오른 1억6000만원이나 된다. 이 돈 역시 대학배구연맹, 배출학교, 중고연맹으로 흘러 들어가 갖가지 명목으로 쓰인다. 그러나 정작 선수들에게 쓰여지는 건 얼마 되지 않는다. 가령 대학교 지원금의 경우 지도자 연구비 명목이 스카우트비로 둔갑된다. 게다가 감독 인센티브로 활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복수의 관계자들은 "대학에서 선수들을 어떻게 관리하길래 프로에 오는 선수들은 하나같이 1년씩 재활을 먼저 해야 한다. 지원을 해도 선수가 허술하게 관리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해결 방법으로 몇 가지가 제시되고 있다. 학교지원금 상한제와 남은 지원금에 대한 재분배다. 그러나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악순환을 끊어낼 방법은 딱 하나다. 한국 프로배구의 숙원 사업인 각 구단의 유소년 시스템 구축이다. 학교지원금을 없애고 구단 직영으로 초·중·고교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여기에 확실한 연고 정책까지 더하면 우선지명권을 얻게 되는 구단들이 자신의 유스 출신 선수들을 위해 더 많은 투자를 하게 된다. 선수들은 더 좋은 환경에서 운동을 할 수 있게 되고 더 나아가 한국 배구의 국제 경쟁력까지 책임질 수 있는 스타로 거듭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로 돌아서게 된다.

'골든타임'을 놓친 KOVO의 미온적 행정과 구단들의 첨예한 이해관계로 인해 매년 유보되고 있는 유소년시스템 구축이야 말로 매년 도돌이표 처럼 반복되고 고쳐지지 않는 학교지원금 문제를 해결할 '황금 열쇠'다.

스포츠2팀 기자 manu35@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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