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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의 기적 우리은행, 촌스런 농구로 세련함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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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용인실내체육관에서 2012-2013 여자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3차전 우리은행과 삼성생명의 경기가 열렸다. 2쿼터 슛을 성공시킨 우리은행 선수들과 코칭스텝이 환호하고 있다.용인=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3.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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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용인실내체육관에서 2012-2013 여자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3차전 우리은행과 삼성생명의 경기가 열렸다. 4쿼터 슛을 성공시킨 우리은행 선수들과 코칭스텝이 환호하고 있다.용인=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3.03.19.
"솔직히 말하면 좀 촌스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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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 위성우 감독은 '부산 사나이'답게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 전형적인 다혈질이라 경기 중 자기 분을 삭이지 못하고 폭발할 때가 많다. 스스로도 '촌놈'의 특징이라고 한다.

그런 위 감독도 "우리은행의 농구는 '촌스럽다'"고 한다. 누가 누구에게 할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촌스러운' 농구는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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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감독은 몇가지 예를 들었다. "도움 수비를 하라고 하면, 자신의 매치업 상대는 횡 버려둔채 다른 선수 수비를 돕는데 치중하죠." "지난 15일 열린 삼성생명과의 챔피언 결정전 1차전이었죠. 경기 전 2년차 가드 이승아에게 절대 기죽지 말고, 5반칙으로 나와도 상관없으니 삼성생명 노장 가드 이미선을 초반부터 밀어불이라고 주문했죠. 그랬더니 정말 죽기살기로 달려들다 3쿼터에 4개의 파울을 하더라구요. 뭐라 그러겠어요. 웃어줬죠."

감독의 요구를 코트 위에서 200% 실천하니 다른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적당히 새겨듣고 요령을 좀 발휘해야 하지만 선수들은 너무 곧이 곧대로 따라한다. 감독으로선 대견하면서도 미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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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감독은 "그런 선수들이다보니 지난 오프시즌에 남자 선수들도 버거운 '지옥훈련'을 버텨내고, 농구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공수의 기본기 훈련을 군말없이 따라하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얼마나 지독했는지 주전 가드 박혜진은 "훈련을 하다 지쳐있을 때 개가 한마리 지나갔는데, 차라리 그 개가 되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결국 '촌스러운' 농구는 기본에 충실했다는 얘기인 셈이다.

세련되지는 못했지만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상대팀을 경기 내내 거칠게 밀어붙이며 실점을 막은 후 빠른 공수 전환으로 득점에 성공했던 우리은행의 '기본기 농구'는 올 시즌 내내 신선한 충격이었고, 결국 19일 용인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챔피언 결정전 3차전에서 삼성생명에 66대53로 승리, 시리즈 전적 3연승으로 통합우승이라는 '기적'을 창출했다. 4시즌 연속 꼴찌에 머물렀던 팀이, 그것도 이렇다 할 전력 보강없이 최강의 자리에 오른 것은 국내 프로스포츠에선 좀처럼 보기 드문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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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은 그동안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지난 2007년에는 당시 박명수 감독이 선수 성추행으로 구속됐고, 간판 선수들이 FA로 팀을 대거 떠났다. 2009년에는 샐러리캡을 위반한 다른 구단에 대한 별다른 징계가 없자 신인 드래프트를 거부했고, 급기야 지난해에는 김광은 감독이 선수 폭행 파문으로 불명예 퇴진하며 선수단은 이른바 '멘탈 붕괴'에 이를 정도였다.

어차피 더 떨어질 곳도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 우리은행은 자존심을 버리고, '초심'을 택했다. 업계 최고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신한은행의 위성우-전주원 코치를 전격 코칭스태프로 영입한 것이다. 감독 경험은 없지만, 신한은행의 통합 6연패를 함께 일궈냈던 두 사람에게 손을 내밀었고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던 이들은 멋지게 화답했다.

여기에 계속 최하위에 머무는 과정에서 박혜진 이승아 등 좋은 신인 선수들을 드래프트에서 뽑을 수 있었고, 이들은 노장들이 대거 포진한 다른 팀들과는 달리 신인임에도 꾸준히 출전하며 경험을 쌓았다. 하지만 젊은 패기만으로는 노련함을 이길 수 없었다. 위 감독은 "예전에는 10점 이상을 이기고 있어도, 4쿼터에는 역전패에 대한 불안감에 남에게 공을 돌리기 일쑤였다. 올 시즌 패배 의식을 극복하는데 가장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위기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역시 팀의 구심점, 에이스이다. 운도 강자의 편이라고 하던가. 당초 영입하려 했던 외국인 선수가 해외 자원봉사를 이유로 오지 못하면서 대체선수로 뽑은 백전노장 티나 탐슨(38)이 에이스 역할을 해줬다. 그리고 국내 선수 가운데 유일한 30대인 임영희(33)가 중심을 잡으면서 득점력을 폭발시켰다. 그러자 박혜진 이승아 양혜진 배혜은이 자연스레 뒤를 따랐고, 김은혜 김은경 등 노장 식스맨들이 묵묵히 제 역할을 했다.

지난 58년 창단된 현존하는 한국 최초의 여자농구팀이라는 프라이드는 온데간데 없고 해체 위기까지 이르는 인고의 세월을 겪었기 때문에 우리은행은 올 시즌 우승은 그 감동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촌스러움으로 묵묵히 걸으며 통합 7연패에 도전하는 막강 신한은행을 넘어서고 명문팀 삼성생명까지 꺾으며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우리은행, 우승 경험이라는 세련함까지 더해진 내년 시즌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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