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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엔딩 스토리]끝내 눈물 이규혁, 당신이 진정한 올림픽챔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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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한국시간)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아들레르 아레나 스케이팅 센터에서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1000m 경기가 열렸다. 경기를 마친 한국 이규혁이 간이 의자에 눕고 있다.한국은 이번 소치 올림픽에 아이스하키를 제외한 6개 종목에 동계 올림픽 사상 최대 규모인 선수 71명을 파견했다. 임원 49명을 포함한 선수단 규모도 120명으로 역대 최대. 역대 최대 규모의 선수단을 파견하는 한국은 메달 12개(금 4개·은 5개·동 3개)를 수확, 2006년 토리노·2010년 밴쿠버 대회에 이어 3회 연속 종합 10위권 내에 이름을 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소치(러시아)=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4.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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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여섯 살의 이규혁(서울시청)이 마지막 잔치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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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여정이었다. 태극마크만 23년을 달았다. 올림픽은 무려 20년간 함께했다. 1994년 릴레함메르(노르웨이)부터 시작된 그의 올림픽 도전이 2014년 소치 대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6차례나 올림픽 무대를 밟은 불멸의 역사가 남았다. 하·동계를 통틀어 대한민국 최초의 기록이다.

이규혁이 13일(이하 한국시각) 러시아 소치 아들레르 아레나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스피드스케이팅 1000m가 마지막 무대였다. 1분10초049, 21위가 마지막 성적표였다. 끝내 메달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는 11일 500m에서는 1·2차 레이스 합계 70초65를 기록, 18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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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지 마세요." 인터뷰 서두에 그 말이 먼저 나왔다. 이미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애써 참아가며 말문을 열었다. 이규혁, 그는 스스로를 실패한 선수라고 했다. "난 올림픽 메달이 없는 선수다. 결국 부족한 채로 끝이 났다." 회한이 몰려드는 듯 했다.

하지만 누구도 복제하기 힘든 선수 생활이었다. 처음 태극마크를 단 것은 1991년 열세 살의 어린 나이였다. 16세 때 올림픽과 처음 만났다.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까지 선수 생활을 한 것이 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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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올림픽은 핑계였다. 메달도 없다는 말을 하며 올림픽을 탈출구로 스케이트를 계속 했다. 그래서 더 즐거웠던 것 같다. 메달을 떠나 스케이트 선수로서는 행복했다." 그의 입가에는 어느새 미소가 찾아왔다. 말문도 터졌다. 이규혁은 "오늘 아침 거울을 보면서 핏줄이 드러난 식스팩과는 끝이라고 생각했다. 선수로는 마지막 레이스였다. 다음 올림픽은 없다. 더 이상은 없다"며 입술을 깨물었다.

4년 전 밴쿠버올림픽 때도 그랬다. 끝이라고. 하지만 차디 찬 얼음판과 4년을 또 동고동락했다. 물음표가 생겼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의 선수 이규혁은 어떨까. "4년 또 하라면 하겠다. 문제는 없다. 다만 이제는 운동을 더 해도 우승 후보가 아니다. 목표의식이 없다."

10일 오후(한국시간)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아들레르 아레나 스케이팅 센터에서 남자 스피드 스케이팅 500m 2차 시기 경기가 열렸다. 경기를 마친 한국 이규혁이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한국은 이번 소치 올림픽에 아이스하키를 제외한 6개 종목에 동계 올림픽 사상 최대 규모인 선수 71명을 파견했다. 임원 49명을 포함한 선수단 규모도 120명으로 역대 최대. 역대 최대 규모의 선수단을 파견하는 한국은 메달 12개(금 4개·은 5개·동 3개)를 수확, 2006년 토리노·2010년 밴쿠버 대회에 이어 3회 연속 종합 10위권 내에 이름을 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소치(러시아)=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4.02.10.
그는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전도사였다. 아시아 선수 사상 최초로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 이상화(26·서울시청)는 이규혁을 보며 성장했다. 외국 선수들도 고개를 숙인다. "네덜란드 선수들이 콧대가 높은데 미셸 뮬더가 존경하는 선수로 저를 꼽아서 놀랐다. 예전에는 우리가 무시당했지만 지금은 한국 선수들의 위치가 높아져 뿌듯하다." 후배들을 칭찬했다.

동시에 갈 길도 멀다고 했다. 그는 소치에서 500m와 1000m 두 장의 올림픽 출전 티켓을 거머쥐었다. 한 종목을 기권하려 했다. 체력적으로 무리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 티켓을 가져갈 후배가 없었다. 아픔이었다. "홀가분하다"고 했지만 그가 풀어야 할 과제였다.

이규혁은 6차례의 올림픽 중 소치 대회가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했다. 힘들다고 생각했지만 즐겁게 했다. 많은 인정도 받았다. 그는 "이번 올림픽을 통해 좀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선수생활을 마무리하게 됐다"며 웃었다.

"당분간 얼음 위에는 절대로 있지 않을 것이다. 경쟁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져줄 것이다." 가혹한 승부의 세계를 떠나는 그의 솔직한 심경이었다. 물론 쉼표 후에는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평창 동계올림픽에 도전할 만한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면서 준비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이규혁은 이날 결승선을 통과한 후 한참 동안 링크를 돌며 손을 흔들었다. 자신을 응원해 준 사람들을 향한 답례했다.

세상은 올림픽을 메달로 평가한다. 이규혁은 메달이 없다. 그 것 뿐이다. 그는 한국이 낳은 진정한 올림픽 챔피언으로 남을 것이다.
소치(러시아)=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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