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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과거 구원파가 연루된 '오대양 사건' 당시 연예인 신도가 밝혀졌기 때문. 지난 1991년 7월 30일자 경향신문에 따르면 구원파가 연예계에도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며, 당시 구원파 연예인의 인맥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는 중견배우 A씨의 증언으로 20여 명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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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당시 보도에는 그 동안 베일에 싸인 '구원파'의 구체적인 활동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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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연예인들에게 "중동전쟁, 석유파동, 에이즈 등이 성경의 예언대로다. 종말이 가까워오고 있으니 구원을 받아야 한다"면서 "구원받지 못하면 사탄의 지배를 받는다. 바코드가 머리에 새겨지게 된다"며 종말론을 강조했고,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을 수 있다"는 방법을 사용해 접근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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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당시 실명으로 거론된 구원파 연예인들이 아직도 소속되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한편 기독교복음침례회는 1962년 권신찬 목사와 그의 사위인 유병언 전 회장이 설립했으며, 유병언 전 회장은 구원파의 첫 목사였다. 구원파는 지난 1987년 오대양 집단자살 사건으로 세간의 관심을 받은 바 있다. 오대양 사건은 (주)오대양 용인공장에서 남녀 시체 32구가 발견된 사건으로 당시 박순자는 자신을 따르는 신도와 자녀들을 집단시설에 수용하고, 신도들로부터 170억 원에 이르는 거액의 사채를 빌린 뒤 원금을 갚지 않았다. 이에 박순자가 끌어들인 사채 중 일부가 (주)세모에 흘러들어간 정황이 포착됨에 따라 구원파와의 관련성을 의심하고 유 전 회장 배후새력으로 지목했으나 결국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스포츠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