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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몰랐던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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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발목만 치료하면 활약에 이상이 없을 것으로 점쳐졌다. 변수가 있었다. 파주NFC 재활 과정에서 대표팀 의무진이 새로운 부상을 발견했다. 단순 부상으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었다. 난맥상이었다. 김진수는 파주NFC 숙소 3층 의무실에서 동료들의 훈련 장면을 지켜보며 트레드밀(러닝머신)을 탔다. 어떻게든 빨리 정상으로 돌아가고자 혼신을 다했다. 하지만 2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튀니지전까지 몸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홍 감독도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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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에게 브라질월드컵은 꿈의 무대였다.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밟은 수재다. 포곡초 4학년 때 열린 2002년 한-일월드컵의 감동에 혼을 빼앗겨 인생의 목표를 '태극전사'로 설정했다.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축구화를 신은 지 불과 2년 만에 파주NFC를 밟았다. 원삼중 재학 시절에도 태극마크를 놓지 않으며 기량을 인정 받았다. 탁월한 기본기와 뛰어난 축구지능은 작은 체격을 커버하고도 넘치는 수준이었다. 당시만 해도 김진수의 포지션은 공격수였다. 신갈고 시절 은사인 유동관 전 고양 대교 감독은 "원삼중 3학년 때 처음 플레이하는 모습을 봤다. 무엇 하나 흠잡을 곳 없이 완벽한 선수였다"고 회상했다. 공격 뿐만 아니라 어느 포지션에서도 빛날 수 있는 멀티 기질을 지녔다. 승부욕도 남달랐단다. 유 감독은 "어떤 상황이 되든 해결사 역할을 했다. 세트플레이 키커 역할도 담당하면서 경기도 조율하고, 일선 방어에 나서기도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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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아닌 또다른 시작
새로운 목표가 기다리고 있다. 2015년 호주 아시안컵이다. 한국은 반세기 동안 아시아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호주 아시안컵은 브라질에서 못다 이룬 꿈을 풀어내기에 충분한 무대다.
고교 졸업 직후 일화를 떠올려 볼 만하다. 당시 김진수는 일본 J-리그 진출을 노렸다. 운동을 마친 뒤 독학으로 일본어 공부를 하면서 미래에 대비했다. 하지만 졸업 후 가치를 제대로 인정 받지 못해 프로의 꿈을 접기에 이르렀다. 갈등 끝에 '좀 더 가치를 끌어 올리자'는 유 감독의 조언을 듣고 두말없이 경희대 진학을 택했다. 김진수는 경희대 재학 중이던 2012년 알비렉스 니가타에 입단하며 프로행의 꿈을 이뤘고, 대표선수로 도약했다.
비 온 뒤 땅은 더 굳어진다. 김진수의 브라질월드컵 출전 좌절은 실패가 아닌 또 다른 시작이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