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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 그래도 유독 눈에 밟히는 제자가 있다. 하대성(29·베이징 궈안)이다. 그만 떠올리면 여전히 마음 한 켠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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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코치 시절 하대성의 소식이 들렸다. 워낙 작은 선수였는데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도 키가 안컸다. 1m60이 안됐다. 임 코치는 "공은 잘 찼지만 너무 작아 힘이 없었다. 주위에서 축구를 그만두고 공부를 하라고 할 정도로 심각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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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이 없었다. 임 코치는 차선을 제시했다. 호남대 카드를 꺼내들었다. "호남대에서 강력하게 원했고 2년만 뛰면 프로로 보내준다고 약속했다. 잔디 구장, 웨이트 시설 등 훈련 조건도 최고였다." 그러나 하대성은 고개를 저었다. 재수를 해서라도 더 좋은 데 가겠다고 했다. 충돌이었다.
그사이 변화가 있었다. 임 코치는 울산 현대 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안타까운 제자'를 지울 수 없었다. 당시 김정남 감독을 설득, 동계전지훈련 기간 중 하대성을 테스트 받게 했다. 합격이었다. "그 때 섭섭한 감정이 모두 풀렸던 것 같다. 만약 1년을 놀았다면 오늘의 하대성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당시 계약금도 받고 아주 좋은 조건에 입단했다."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고질인 무릎 통증이 재발했고, 울산에서 '정리 대상'에 올랐다. 하대성은 임 코치의 추천으로 대구로 이적했다. 대구 이적 후 비로소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전북을 거친 그는 2010년 FC서울에 둥지를 틀면서 정점을 찍었다. 그는 올시즌 이적료 180만달러(약 19억원)에 베이징 궈안으로 이적했다.
일찍 주목받았지만 꽃망울을 터트리지 못했다. 좌절과 방황의 연속이었지만 단 한 번도 축구에 대한 열정은 꺾이지 않았다. 결국 빛을 봤다. 만 29세인 하대성은 2014년 브라질월드컵 최종엔트리에 승선했다. "대성이는 기술적인 감각이나 센스가 최고다. 볼을 잡으면 어떻게든 해결해 줄 수 있는 선수다. 부평고 시절 전국대회 3관왕을 했지만 (김)승용이와 (이)근호가 더 주목받았다. 대성이는 늦게 보여줬다. 그 때 감독 입장에서 잘 기다려줬던 것 같다. 물론 몸만 안 아팠더라면하는 안타까움은 여전하다. 그래도 축구선수의 길을 포기하지 않은 것은 굉장히 잘 한 판단이었다. 가장 안타까웠던 제자가 월드컵에 나가니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대성이는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환하게 웃었다.
하대성은 '대기만성형'이다. 홍명보호에서 현재의 위치는 조커다. 임 코치는 다시 주문했다.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면서 준비를 얼마만큼 잘하느냐가 중요하다. 처음에는 조커로 나설 수 있지만 주전 자리도 꿰찰 수 있다. 잘 기다리면서 기회를 포착해 꼭 한국 축구에 일조를 해줬으면 좋겠다. 축구에 대한 감각은 누구보다 좋으니 당황하지 않으면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제자의 눈물을 잊을 수 없는 스승은 또 한 번의 대반전을 기도하고 있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