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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만호는 비록 은메달에 그쳤지만 '무명의 반란'으로 여겨질 만큼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쾌거를 이뤄냈다.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중학교 1학년인 2002년, 체육선생님의 권유로 레슬링과 만난 오만호는 19세인 2008년부터 자유형 74㎏급으로 가슴에 태극마크를 단 유망주였다. 그러나 국제대회에서는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해 주목을 받지 못했다. 2009년 아시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3위에 오른 것이 주니어 최고 성적이었다. 시니어로 무대를 바꿔 2012년에 나선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13위에 그쳤다. 지난해 5월 유니버시아드 대표 선발 대회에서도 5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국제레슬링연맹이 체급 조정으로 남자 자유형 70㎏급을 신설하면서 오만호에게도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12월 새롭게 창단한 울산남구청이 자유형 70㎏급 선수를 찾고 있었고 김만기 울산남구청 감독이 오만호의 성실성을 높게 평가해 그를 영입했다. 그 때부터 오만호는 70㎏급 선수로 변신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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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출전한 아시안게임에서 오만호는 1회전을 부전승으로 통과한뒤 8강전에서 카자흐스탄의 도그두르벡 울루를 7대2로 제압한 뒤 4강에 올랐다. 4강에서는 남북 대결을 펼쳤다. 오만호는 장명성을 상대로 6분간 1-1로 승부를 내지 못했지만 후취점을 낸 선수가 이긴다는 규칙에 따라 승자가 됐다. 그러나 오만호는 결승에서 압두라크모노프의 벽을 넘지 못하고 은메달을 따내는데 만족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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