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로서 페널티킥을 놓친 것은 정말 아쉽다. 재성이가 만회해줘서 고맙게 생각한다."(손흥민) "친구 흥민이가 놓친 PK를 만회할 수 있어 다행이다."(이재성)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뉴질랜드전, 손흥민(레버쿠젠)과 이재성(전북) 1992년생 동갑내기 막내들은 그라운드의 중심이었다. 전반 38분, 손흥민은 골문 9.15m 앞에 섰다. 한교원(전북)이 얻어낸 페널티킥이었다. '두리삼촌' 차두리의 은퇴 경기, 누구보다 승리를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손흥민의 오른발 슈팅이 상대 골키퍼의 손끝에 튕겨나왔다. 손흥민은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며 괴로워했다.
후반 18분 '슈퍼루키' 이재성이 '동기' 손흥민 대신 그라운드에 들어섰다. 쉴새없이 측면을 파고들며 찬스를 노렸다. 0-0 답답한 흐름이 이어지던 후반 40분 '전북 에이스' 이재성의 왼발이 번쩍 빛났다. 후반 40분 김보경의 필사적인 왼발슛이 골키퍼의 손을 맞고 튕겨나오자 전광석화처럼 쇄도하며 왼발로 골망을 갈랐다. A매치 2경기만의 깜짝 데뷔골이었다. 손흥민은 페널티킥을 놓쳤고, 이재성은 천금같은 결승골을 넣었다. 결국 '두리삼촌'의 은퇴식에서 값진 승리를 선물했다. 1992년생 당찬 막내들이 그라운드를 지배했다. 지옥과 천당을 오가며 이들의 우정은 빛났다. 파주 소집 훈련 기간 내내 둘은 늘 붙어다녔다. 손흥민은 파주트레이닝센터가 처음인 이재성을 배려하고, 이끌었다. 뉴질랜드전 후 손흥민은 가장 먼저 '친구' 이재성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재성 역시 A매치 데뷔골보다 친구 손흥민의 실수를 만회한 것이 기뻤다.
'92라인의 약진'은 최근 한국축구의 '현상'이다. 슈틸리케호의 우즈베키스탄-뉴질랜드전에선 '슈퍼루키' 이재성이 뜨겁게 주목받았다. 박지성의 심장, 이청용의 축구센스, 이근호의 투지를 지닌 선수로 감독과 팬들의 확실한 눈도장을 받았다. 지난 1월 호주아시안컵에선 '슈퍼스타' 손흥민과 함께 왼쪽 수비수 김진수가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왼쪽 라인을 치고 달리는 거침없는 오버래핑과 정확한 크로스는 속을 뻥 뚫어줄 만큼 시원한 득점루트였다. 대표팀 막내지만 세계 어느 무대에서도 기죽지 않는 강심장과 단단한 자신감을 지녔다.
K리그에서도 1992년생 공격수들의 존재감은 빛난다. 황의조(성남), 이종호(전남), 윤일록(서울) 등은 매경기 팀의 최전방을 책임진다. 황의조는 올시즌 김학범 성남 감독의 페르소나로 거듭났다.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에서 2경기 연속골을 쏘아올리며 팀 에이스로 거듭났다. 지난해 10골을 터뜨린 이종호 역시 노상래 신임 감독의 전폭적인 신뢰속에 매경기 선발로 나선다.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 부상을 딛고 돌아온 윤일록 역시 최용수 감독이 믿고 쓰는 공격수다. 지난달 17일 ACL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와의 조별리그 3차전, 최전방에 섰다.
1992년생 막내들의 약진은 대표팀, K리그 전반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고 있다. 뉴질랜드전을 앞두고 파주에서 만난 수비수 윤석영은 손흥민 김진수 이재성 등 '92라인'의 약진을 '형'으로서 흐뭇하게 바라봤다. "한국축구는 앞으로 더 발전할 것이다. 1992년생 후배들이 잘해주면서 대표팀 전체 분위기가 더 좋아졌다"고 귀띔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