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진 OK저축은행 감독과의 2014년 3월 인터뷰를 꺼내봤다. 2013~2014시즌을 막 끝낸 뒤였다. 30경기에서 11승19패를 거뒀다. 7개팀 가운데 6위였다. 김 감독은 '계속 전진'을 말했다. 김 감독은 "현실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뒤'가 없었다. 그저 앞만 보고 달렸다. 다가오는 두번째 시즌도 계속 전진할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계속 전진'은 대박을 쳤다. 챔피언결정전에서 삼성화재를 눌렀다. 3연승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경기도 용인 OK저축은행 숙소에서 '우승 감독'을 만났다.
▶기적 그리고 행운
김 감독이 앉은 자리 뒤에는 '기적을 일으키자'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OK저축은행 유니폼에도 똑같이 박혀있다. 그리고 만우절인 4월 1일. 김 감독과 OK저축은행은 거짓말처럼 기적을 일으키며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우승 이야기를 하니 밝은 표정을 지었다. "정말 기적은 기적이다. 나도 살면서 이런 기적을 경험할 줄은 몰랐다"고 말한 김 감독은 "우승 가능성은 10%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우승한 것은 선수들 덕분이다. 선수들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기적적 우승의 첫번째 원동력은 '자아 인정'이었다. 김 감독은 "객관적인 전력에서는 삼성화재가 나았다. 나도, 선수들도 모두 인정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챔피언결정전이 시작되기 전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안되는 것은 받아들이자. 남들은 우리가 경험도 없다고 한다. 체력도 부족하다고 한다. 쿨하게 인정하고 털어버리자. 거기에 전전긍긍하며 힘을 뺄 필요는 없다. 편하게 경기하자"고 했다. 어깨에서 부담을 덜어낸 선수들은 펄펄 날았다.
여기에 '행운'도 작용했다. 김 감독은 "벤치에서는 모든 것을 준비하기는 했다. 상대 분석도 세밀하게 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는 운이 크게 작용했다. 아무리 분석하고 준비해도 그것이 맞아 떨어져야 된다. 바둑에서 보면 '아다리(적중의 일본식 표현)'가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번 챔피언결정전에서는 모든 것이 맞아떨어졌다. 행운이었다"고 설명했다. 반론을 제기했다. '행운'으로 설명하기에는 그동안 흘린 땀의 가치가 너무 퇴색된다. 엄청난 노력이 있었으니 행운도 따라온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김 감독은 고개를 저었다. "노력은 모든 팀이 한다.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다.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어느정도까지는 왔지만, 그래도 우승은 행운이 따랐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청출어람? 그저 한 번 이겼을 뿐
OK저축은행의 우승 뒤 '청출어람'이라는 단어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챔피언결정전 상대는 신치용 감독의 삼성화재였다. 신 감독과 김 감독은 사제지간이다. 김 감독은 1995년 삼성화재 창단 멤버로 신 감독과 만났다. 2006년 은퇴할 때까지 감독과 선수로 함께 했다. 제자 김 감독이 스승 신 감독을 이겼다. '쪽에서 우러난 물감이 쪽빛보다 더 푸르다'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의 표본이었다.
하지만 김 감독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저 뭣도 모르고 한 번 이겼을 뿐"이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삼성화재는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한 번 왕좌를 놓쳤다고 무너지는 팀이 아니다. 2006~2007시즌과 2007~2008시즌 현대캐피탈에게 왕좌를 내줬다. 그 이후 7시즌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그게 삼성화재다. 나는 그저 아무것도 모른채 불타 올라서, 거기에 행운까지 더한 상태에서, 한 번 이겼을 뿐이다"고 말했다. 챔피언결정전 우승 직후 인터뷰와도 궤를 같이 했다. 김 감독은 "이번 우승으로 신 감독님을 이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가 돼야 신 감독을 넘어섰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날렸다. 고민을 거듭했다. 김 감독은 "우승 횟수로 따질 수도 없을 것이다. 신 감독님이 못해본 것을 해야만, 그제서야 이겼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신 감독님이 못 이룬 것이 있던가. 없는 것 같다"고 답했다. 이어 "신 감독님은 신 감독님이고 나는 나다. 결국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이제부터가 개고생
김 감독에게 앞으로의 길을 물었다. 거침없는 단어가 돌아왔다. "앞으로는 개고생이 펼쳐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제까지 2시즌은 선수들과 즐겁게 생활했다. 꿈을 가지고 웃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시행착오도 많았다. '애썼다'는 표현을 쓰면 될 것"이라고 했다. 김 감독은 "이제부터는 정말 힘들 것이다. 견제 세력도 많아질 것이다. 조금만 흐트러지더라도 문제삼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우승이 독약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앞으로는 더욱 조심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감독이 말한 '앞으로의 개고생' 끝에는 뭐가 있냐고 물었다. 현실적이 답이 나왔다. "다음 시즌에 우리가 4강에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다른 팀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 감독은 성적보다는 팀의 발전을 그리고 있었다. 그는 "우승보다 중요한 것은 탄탄한 팀을 만드는 것이다. 그 어떠한 변수에도 흔들리지 않는 탄탄한 팀을 만들어야 한다. 거기에 있어서 내 역할은 '지도자'가 아니나 '관리자'다. 내가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특정 영역에는 전문가를 쓸 생각이다.전문적 도움을 바탕으로 하나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내가 꿈꾸고 추구하고 있는 큰 그림이다. 그림이 잘 그려진다면 개고생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며 밝혔다. 용인=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