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중 갑자기 프로농구 공인구가 사라졌다. 시즌이 한창 진행 중인 지난해 12월의 일이다. 이미 본지에서 자세한 내용을 언급한 적이 있다.<12월15일 온라인 게재 기사제목 'KBL 또 다른 난맥상, 공인구가 사라졌다'>
KBL은 덮는데 급급했다. 있어서는 안될 일이 일어났다.
책임자 처벌은 없었다. 일반 기업이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KBL은 오랜 공인구 후원업체 '스타'와 계약하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운 공인구 후원업체를 물색했다. 몰텐, 윌슨 등과 접촉했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현금지원이 되지 않았다.
결국 나이키와 지난해 7월 말 접촉, 구두합의를 했다. 3년 계약에 총 4억3000만원을 받기로 했다. 가장 좋은 조건이었다.
한국 나이키 측이 미국 본사에 계약서를 제출하느라 시간이 걸렸다. 결국 시즌 전 계약하지 못했다. KBL은 지난 시즌 나이키 공을 공인구로 채택했고, 시즌이 시작됐다.
세부적인 계약조건에서 충돌이 일어났다. 7~8개 항목의 의견이 일치되지 않았다. 대부분을 나이키 측이 양보했고, 최종적으로 1가지 조건만 남았다.
우선협상기간에 대한 부분이다. 복잡한 부분이었다. 계약만료 시점 2개월 전인 2017년 3월31일까지 우선협상을 나이키와 한다. 재협상이 결렬되면, KBL은 4월1일부터 다른 업체와 계약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이키에게 계약조건을 통보해야 한다.(계약만료 2개월 전부터 타 업체와 협상할 수 있다. 협상이 되지 않을 경우 계약 만료 시점부터 90일 동안 역시 나이키가 우선협상기간을 갖는다.) 즉, 계약만료시점인 6월1일부터 '90일간 우선협상기간(90일 이내 KBL이 다른 업체와 계약을 맺으면 나이키에게 조건을 통보해야 한다)'을 KBL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당시 이 계약을 주도했던 인물은 KBL 이재민 사무총장이었다. 당시 그는 독단적으로 나이키와의 공인구 계약을 파기했다. 그 시점에서 KBL 이사회와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나중에 보고하는 형식이었다. 나이키 계약이 파기된 직후 기자는 몇몇 베테랑 단장들에게 물었다. 하지만 모 구단 단장은 "이사회에서 나왔던 얘기는 '나이키가 불공정 계약을 한다'는 보고만을 들었다"고 했고, 또 다른 단장은 "나이키 외에는 대안이 없는데,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즉, 이사회에서도 언급은 됐지만, 제대로 결론이 난 사항은 아니었다.
실제 당시 나이키에서 요구하는 조건은 그리 까다롭지 않았다.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결국 이 총장의 독선적인 결정이 KBL에 금전적 손해와 이미지 실추라는 악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조용히 넘어갔다. '해외토픽감'인 시즌 중 공인계약 불발에 책임자 처벌이 없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시즌이 다 끝난 시점에서 굳이 나이키 공인구 계약 불발 사건을 얘기하는 이유. KBL 고위수뇌부의 정책결정과 일처리 방식의 대표적인 예이기 때문이다.
결국 대부분이 반대하는 '외국인 2인제' 등 수많은 경기력에 관한 장치들도 어떤 방식으로 배치되고 작동되는 지 알려주는 단초다.
김영기 총재는 시즌이 끝난 뒤 기자 간담회를 두 차례 열었다. 그리고 새로운 청사진에 대해 얘기했다. ▶리그 축소 ▶FIBA 룰에 입각한 심판진의 재배치 등이 주요 골자다. 이 부분도 현실적으로 실행될 수 있을 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경기력을 위해 리그 축소를 고민할 수는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다. 각 구단의 동의와 함께, 토토지원금, 스폰서비의 축소 등 부작용에 대비해야 한다. 따라서 매우 긴밀한 논의가 장시간에 필요하다. 즉흥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심판진에 대한 얘기도 마찬가지다. 'FIBA 테스트를 통과한 심판을 쓰겠다'고 했다. WKBL, 대한농구협회와 협의, '심판풀(POOL)'을 만들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5월 예정된 FIBA 감독관 교육에 WKBL 소속 심판진은 참석할 수 없다. 그렇다면 FIBA 테스트를 통과한 심판진의 인력확보를 어떻게 할 지 난감한 상황. 설사 '심판풀'을 만든다고 해도 각 리그의 심판진 연봉 차이와 기준, 그리고 배정에 대한 합의는 매우 어려운 문제다.
WKBL 관계자나 몇몇 농구관계자는 "심판진 재배치는 사실상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말할 정도였다. 즉, 총재의 즉흥적 아이디어 차원이라는 의미. 하지만 공식적 자리에서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제도를 언급한다는 것은 너무 가볍다. 결국 실행단계에서 가져올 혼란에 대해서는 전혀 대책이 없는 '순진한' 발상이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모습. 올 시즌 수없이 터져 나온 KBL의 난맥상 행정(챔프전 평일 오후 5시 개최 챔프전 도중 기록원 퇴장 해프닝)의 성격이 모두 그랬다. 게다가 올 시즌 수없이 터져나온 악재에 대한 이목을 돌리려는 의도일 가능성도 엿보인다.
즉, KBL이 취하고 있는 행보는 현실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없다. KBL 수뇌부는 시즌이 끝난 뒤 "철저한 반성을 통해 개혁하겠다", "10개 구단 단장과 워크숍을 하겠다. 언론과 정기적으로 만나 현안을 논의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심각한 문제가 있다. 올 시즌 드러난 문제점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대표적인 예로 그는 외국인 선수 2인제에 대해 드래프트보다 자유계약제를 하겠다고 말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외국인 2인제를 중심으로 한 쿼터제 확대에 대한 부분이다. 하지만 총재는 드래프트제의 문제를 얘기한다. 그가 말하는 자유계약제는 자신이 줄곧 주장하는 단신선수에 대한 자유계약제다. 현장이나 농구팬이 지적하는 문제점과 전혀 일치점이 없다. 결국 여전히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철저한 반성을 통한 개혁'의 출발점은 올 시즌 드러난 난맥상에 대한 원인파악과 책임 소재 파악이다. 총재가 할 수 없다면, 10개 구단 단장들의 모임인 이사회에서라도 해야 한다. 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