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진게 아니다. 한국 야구의 미래에 엄청난 사건이다."
프로야구계에서 한화 이글스 김성근 감독은 늘 '미스터 쓴소리'의 역할을 맡는다. 그래서 그를 불편하게 여기는 야구계 인사도 많다. 매우 오래된 현상이다. 본인 역시 이런 분위기를 잘 안다. 그래도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적어도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나. 나는 늘 욕 먹었으니까 괜찮다"며 또 쓴소리를 한다.
김성근 감독은 이번 프리미어12 대회가 한국 야구 발전의 커다란 분수령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지난 8일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대회 개막전에서 일본에 0대5로 완패한 것에 대해 크게 걱정하고 있다. 단순히 한 번의 패배가 아니라 그 안에서 현저히 벌어진 한일 야구 수준의 격차를 통감하고, 이 현상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수도 있다는 심각한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 감독은 "이 패배를 야구계 전체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단순히 한 번 졌다고 분해할 게 아니다. 여기서 다시 발전을 도모해야만 일본에 이길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한국 야구가 위험하다. "고 까지 했다.
현재 일본 최남단 오키나와에서 진행중인 한화의 마무리캠프를 지휘하고 있는 김 감독은 최북단 삿포로에서 열린 개막전을 세심히 살펴봤다. 첫 소감은 "오타니라는 투수가 정말 엄청나더라"였다. 그러나 이런 감탄은 잠시 뿐. 이내 걱정이 쏟아졌다. 기본적으로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김인식 감독에 대한 걱정부터 시작해서, 나아가서는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는 한국 야구에 대한 우려까지 다양하게 쏟아져 나왔다.
김 감독은 우선 "이번 대회 결과로 김인식 감독이 절대 희생양이 되어선 안된다"는 점을 언급했다. 사실 한국 대표팀은 이제 겨우 한 경기 치렀을 뿐이다. 11일 도미니카전부터 예선 4경기가 더 남아있다. 이 결과에 따라 당초 목표인 예선을 통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예선을 통과하지 못할 경우 그 비난의 화살이 오랜 지기인 김 감독에게 돌아가지 않을까 우려했다. 김 감독은 "애초에 왜 김인식이 그 자리를 맡게 됐나를 생각해야 한다. 큰 짐을 짊어지지 않았나. 지금 대표팀이 어렵게 된 게 감독의 책임은 아니다. 선수들이 다들 아프다 뭐다 해서 어렵게 꾸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감독은 한국 야구계가 삿포로 참패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냥 어쩌다 보니 지게 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김 감독은 "일본은 몇 년 전부터 '사무라이 재팬' 대표팀 체제를 단단히 해놨다.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오래전부터 어린 선수들을 꾸준히 길러냈다. 오타니도 그런 시스템에서 탄생한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계속 좋은 에이스들이 나오고 있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벌써 몇 년째 그런 투수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런 투수들은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길러내야 한다. 도대체 대표팀이 언제까지 김광현만 바라봐야 하나. 팀의 성적이나 프로야구 관중 증가도 중요하지만, KBO 수장이나 각 팀의 대표들이 한국 야구 전체의 발전을 위해 좀 더 큰 생각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최근 수 년간 한국 야구는 엄청난 부흥을 이뤄냈다. 프로야구 관중의 폭발적인 증가 뿐만 아니라 국제대회에서도 계속 좋은 성적을 냈다. 그러나 화려한 성취 속에 잠재적인 문제는 분명 도사리고 있다. 그간은 이를 못알아봤거나 외면했을 뿐이다. 삿포로 참사는 그 어두운 면을 잠깐이나마 비춘 것일 수도 있다. 프리미어12에서 대표팀이 어떤 성적을 내든지간에 근본적인 한국야구의 발전에 관해서는 충분히 고민해볼 만 하다. 김성근 감독은 바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원래 몸에 좋은 약은 입에서는 쓴 법이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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