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전에 그라운드에 충분히 물을 뿌려 주세요."
최근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실시한 K리그 주장 간담회에서 나온 선수들의 요청사항이었다. 사실 이는 하루 이틀 된 이야기가 아니다.
무려 15년 전인 2002년, 한-일월드컵을 준비할 당시였다. 4강 신화를 쓴 거스 히딩크 감독은 한국전이 열릴 경기장에 "경기 전 물을 많이 뿌려달라"고 대한축구협회에 요청했다. 실제 경기 전 스프링클러가 다량의 물을 쏟아냈다. 당시 히딩크 감독은 "우리팀은 스피드가 강점이다. 그걸 살리기 위해선 그라운드가 충분히 젖어 있어야 볼이 좀더 빠르게 굴러간다. 많은 물을 뿌리는게 우리에게 유리하다"고 말했다.
최근 조진호 부산 아이파크 감독도 "경기전 그라운드에 물을 많이 뿌려달라. 그래야 경기 속도가 빨라지고 더 많은 공격 찬스가 만들어진다. 골도 더 많이 날 수 있다"고 말했다.
2017년 KEB하나은행 K리그 대회 요강에 '경기 전 물을 뿌리라'는 규정은 없다. 클래식(1부)과 챌린지(2부) 총 22개 구장에선 경기 전 물을 뿌리는 곳도 있고, 그렇게 하지 않는 곳도 있다.
A 선수는 "선수 입장에선 조금 젖어 있는 그라운드가 좋다. 빠른 패스가 가능하다. 바짝 말라있는 것 보다는 촉촉한 그라운드가 부상 예방 차원에서도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 축구의 장점으로 스피드를 꼽았다. 스피드를 살리기 위해 앞서 체력 훈련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개인 기술로 승부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조진호 감독 처럼 K리그 감독 중에도 경기 전에 그라운드에 물을 뿌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가진 지도자들이 다수 있다. FC서울의 홈구장인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이 운영한다. 그들은 지난 22일 서울-인천전을 앞두고 스프링클러로 다량의 물을 뿌렸다. 그 경기에선 총 3골(3대0 서울 승)이 터졌다.
그러나 경기 전에 물을 뿌리지 않는 구장들도 있다. 스프링클러 장비가 완비돼 있지만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선 "선수들이 원하고 있다. 그렇지만 일부 경기장을 운영하는 쪽에서 물 뿌리기를 주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축구인은 "우리나라 프로 경기가 벌어지는 모든 축구장은 구단이 소유하고 있지 않다. 대부분 시가 소유하고 있다. 경기력 향상을 위해 물을 뿌리는게 도움이 된다면 물값이나 인건비를 아까워해서는 안된다. 경기력이 올라가 좋은 축구 콘텐츠를 만들면 그 수입이 고스란히 인프라 투자로 이어질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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