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10시30분 (부산행) KTX표를 예매해놓은 상태다. 90분 내에 경기를 마치지 못하면 4시간 넘게 버스를 타야 한다(웃음)."
17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FC서울과의 2017년 KEB하나은행 FA컵 16강전을 앞둔 조진호 부산 감독이 미소를 지으며 속마음을 드러냈다. 챌린지(2부리그) 2위인 부산에게 클래식의 서울은 높은 벽이었지만 '이변'을 꿈꿨다.
조 감독은 이날 KTX표를 취소해야 했다. 하지만 '승리'라는 바람을 이룬 해피엔딩이었다.
황선홍 서울 감독은 박주영을 필두로 주전 대부분을 부산전에 투입시켰다. 황 감독은 "부산은 절대로 만만치 않은 팀이다. 연장전, 승부차기까지 염두에 두고 라인업을 짰다"고 말했지만 내심 90분 내에 깔끔하게 승부를 마치고자 하는 바람을 담았다. 반면 부산은 원톱 이정협이 주말 아산전에서 발목을 다쳐 출전명단에서 제외됐다. 챌린지에서 이정협이 결장한 경기서 무승에 그쳤던 징크스가 있는 부산에겐 악재였다.
이날 120분을 주도한 것은 서울이었다. 서울은 경기 내내 점유율을 유지하면서 부산을 압박했다. 그러나 중원을 두텁게 다진 부산의 전열은 쉽게 깨지지 않았다. 황 감독은 후반 20분 박주영 대신 데얀을 내보내며 승부수를 던졌다. 그러나 데얀의 결정적인 슈팅이 잇달아 부산 수비진에 막히면서 결국 승부는 연장으로 치달았다. 서울은 연장 전, 후반에도 부산을 몰아붙였지만 골문을 열지 못한 채 결국 승부는 '러시안 룰렛'를 불리는 승부차기에 접어들었다.
승부차기도 손에 땀을 쥐는 접전이었다. 부산의 세 번째 키커로 나선 허범산의 왼발슛이 허공을 가르면서 승리의 여신은 서울에게 미소 짓는 듯 했다. 그러나 이어진 서울의 기회에서 이석현의 왼발슛을 부산 골키퍼 구상민이 막아냈다. 0번째 키커까지 나서는 팽팽한 균형이 이어졌다.
승리의 여신은 결국 부산의 손을 들어줬다. 부산의 9번째 키커로 나선 김문환이 오른발골을 성공시켰지만 이어진 서울의 기회에서 윤일록의 슛이 허공을 가르면서 부산의 8강행이 결정됐다.
상암=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