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백지은 기자] 대체 이런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끔찍한 연쇄 살인마 연기를 소화한건지 놀랍다.
SBS 수목극 '수상한 파트너'를 마친 동하의 얘기다. 실제로 만난 동하는 긍정적인 마인드에 올곧은 소신, 겸손한 태도와 똑 부러지는 말솜씨를 갖춘 근래 보기 드문 배우였다. 작은 칭찬에도 광대 승천 함박 미소를 띄는 순수함도 엿보였다. 그래서 더더욱 그가 냉철한 살인마를 연기했다는 게 의외로 다가왔다. 그런 동하에게 '수상한 파트너' 뒷 이야기를 들어봤다.
'수상한 파트너'는 기억상실로 결정적인 순간을 무한 반복하는 살인자와의 쫓고 쫓기는 스릴러이자 남녀주인공의 아주 웃기는 로맨틱 코미디다. 동하는 택배 기사를 가장해 정체를 숨기지만 사실은 냉혹한 연쇄 살인마였던 정현수 역을 맡아 열연했다.
"악역인데 생각보다 호평이 많아서 다행이다 싶었어요. 사실 지봉 커플이 달달한 로맨스를 그리는 로코물인데 저는 그들의 만남을 방해하는 역이니까 욕 많이 먹을 줄 알았거든요. 상처받을 줄 알았는데 다행이었어요."
정현수는 순수하고 순진한 얼굴 뒤에 살인마의 모습을 숨긴 캐릭터였다. 처음 양셰프 살인 용의자로 검거돼 은봉희(남지현)의 변호로 혐의를 벗자 세상 순진한 미소를 지으며 행복해 했던 그가 살인마라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는 모두를 놀라게 했다. 아무리 정의 구현을 위해서라지만 낯빛하나 바뀌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그의 잔혹성 앞에 시청자도 숨을 죽였다.
"사실 정현수는 소시오패스에 가까웠어요. 정상이 아니었다면 택배 기사가 되지 못했겠죠.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어떤 언행을 했을 때 상대가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는지 분명히 알고 있는 캐릭터였어요. 그래서 은봉이와 지욱이(지창욱) 앞에서 착한 모습도 보일 수 있던 거고요. 하지만 우리가 엄청난 범죄의 피해자가 됐다고 했을 때 피의자를 죽이고 싶다고 생각할 수는 있어도 실행에 옮기진 못하잖아요. 정현수는 그걸 실행에 옮겼죠. 감정적인 이익을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거예요. 그러니 소시오패스인거죠. 정현수의 머리엔 복수 하나밖에 없어요. 그래서 방계장(장혁진)을 찌르기 전에 멈칫하고 은봉이도 죽이지 않았죠. 언제든 죽일 수 있지만 그러면 복수를 할 시간이 지연되니까요."
무엇보다 시청자를 전율케 했던 건 마지막 반전이었다. 모두가 정현수 캐릭터를 정의구현형 복수의 화신이라고 생각했다. 고교시절 자신의 첫사랑을 집단 성폭행하고 죽인 가해자들을 살해하는, 그런 인물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식스센스급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정현수는 집단 강간 사건을 방관한 가해자 중 하나였던 것. 그 죄책감으로 기억을 잃고 복수귀로 거듭났던 그가 점차 기억을 찾아가고, 마지막 법정신에서 "너잖아 정현수"라는 노지욱의 압박에 결국 죄를 자백하는 모습은 역대 드라마에서 쉽게 보지 못했던 놀라운 반전이었다. 충격적인 반전에 시청자들도 일제히 무릎을 쳤다.
"저도 모르고 작품을 시작했어요. 그냥 현수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여자를 범죄로 잃었고 복수심에 불타 살인을 저지르고 다닌다는 것만 알고 작품을 시작했어요. 그 대상이 첫사랑인지 누나인지 여동생인지도 나와있지 않았고요. 그러다 10부 이후에 가해자였다는 걸 알게 됐죠. 저도 정말 놀랐어요. 하지만 거기에 얽매일 수는 없었어요. 반전을 알고 있긴 하지만 아직 드라마에서 보여줄 때가 아니니 최대한 배제하고 연기하려고 했어요."
상당히 세밀한 캐릭터 분석이다. 이렇게 캐릭터를 연구하고 풀이하는 과정이 디테일한 배우는 꽤 오랜만이다. 그에게 쏟아진 연기 호평은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동하는 자신의 연기에 완벽히 만족하지는 못한다고.
"사실 초반부에 집중이 잘 안돼서 그 사람 옷을 다 입지 못한 게 아쉬워요. '김과장'이 끝나고 바로 들어간 작품이라 캐릭터를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거든요. 제일 아쉬운 부분이 희준(2PM 찬성)이를 죽이는 신이었어요. 저는 한번 딱 찌르고 멋있게 있다 갔거든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러면 안됐더라고요. 이 캐릭터를 분석하면서 실제 살인자 인터뷰를 많이 찾아봤어요. 우발적인 살인은 그렇지 않은데 원한에 의한, 특히 계획적인 살인은 사람을 찌르면 본인도 미쳐가면서 난도질을 하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생각해도 그럴 것 같아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당한 걸 그대로 갚아주고 싶어서 내 목숨이나 인생은 상관 안하고 복수를 선택한 사람이니까요. 그 부분이 아쉬워요."
어쨌든 동하에게는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는 찬사부터 극을 이끈 하드캐리라는 평까지 다양한 칭찬이 쏟아졌다.
"저는 지금까지 했던 모든 작품의 모든 캐릭터가 인생캐릭터라고 생각해요. 시청률 차이, 작품 인지도 차이는 있겠지만 저는 모든 작품이 너무나 소중했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어떤 작품이 인생 캐릭터다, 인생작이다 꼽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캐릭터와 대본을 분석하고 좋은 사람들과 좋은 작품하는데 희열을 느끼기 때문에 부담은 없어요. 다만 제가 모니터링해도 아쉬운 점이 많거든요. 그런데 호평을 해주시니까 저는 아직 그럴 자격이 없는데 감사하면서도 부담스러워요."
silk781220@sportschosun.com, 사진=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