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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김영란법 적용 대학축구, 해묵은 금전 관례 탈출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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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임실경찰서는 8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위반 혐의로 전북 소재 한 대학축구부 김 감독(54)과 또 돈을 건낸 한모씨(50) 등 20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김 감독이 학교로부터 월급을, 또 학부모로부터 월급 명목의 돈과 판공비를 추가로 받았다고 보고 있다. 그 금액이 청탁금지법 시행(9월말)부터 올해 3월까지 총 3500여만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경찰은 김 감독이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자로 판단했다.

김 감독은 명문대 선수 출신으로 유명 대학팀 감독까지 지낸 잘나가는 지도자였다. 그러나 그는 이번 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하는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했다.

김 감독은 전임 코치와 불화가 있었다. 팀을 떠난 코치는 좋은 감정이 아니었다. 일부 학부모와 함께 김 감독을 몰아내는 작업을 진행했다. 일부 학부모가 국민권익위원회에 '감독을 교체해달라'는 민원을 접수했고, 사실 확인과정에서 경찰 수사 의뢰가 들어갔다.

경찰에 따르면 김 감독은 학교가 주는 월급 150만원에다, 학부모들로부터 월급 500만원, 판공비 100만원씩을 받았다.

그동안 대학축구는 물론이고 다수의 학원 스포츠에서 감독들의 호주머니를 학부모들이 채워준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한 대학 스포츠 관계자는 "이번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났을 뿐 이런 식의 금전 거래는 관례 처럼 흔하게 일어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말썽이 생겨서 외부로 드러난 사람만 죄인이 되는 꼴"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학원 스포츠의 어두운 한 단면을 잘 보는 사례 중 하나다. 대학 스포츠에서 학교 재정이 넉넉해 학부모들이 돈을 내지 않는 곳은 거의 없다. 유수의 명문 대학들은 학부모들이 내야할 돈이 적다. 그러나 김 감독이 이끌던 지방 대학 축구팀은 학교 측이 스포츠팀에 충분한 금전 지원을 해줄 수 없는 상황이다. 감독 월급을 제때 주지 못하는 곳도 여럿 있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어쩔 수 없이 학부모가 자기 자식과 팀을 위해 돈을 갹출하고 있다. 감독의 얼마 안 되는 월급을 보충해주는 건 물론, 판공비까지 만들어주는 게 현실이 돼 버렸다. 한 학부모는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돈을 내는 것이다. 기량이 좋아지고 또 팀이 좋은 성적을 내 취직할 수 있기를 바라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학부모들이 느끼는 경제적 부담은 집안 형편에 따라 차이가 난다고 한다. 또 학교별 차이를 감안하면 월 30~100만원씩(추정) 학부모들이 갹출하고 있다. 일반 학생 학부모들이 학원비 내는 셈 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학원 스포츠의 구조는 매우 불안하다. 김영란법 하에서 어느 한 쪽에서 불만이 생길 경우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학부모는 돈을 내기 때문에 당연히 기대 심리를 가지게 된다. 자기 자식이 불이익을 받는다고 생각되면 본전 생각이 나기 마련이다. 그때부터 감독에 대한 불신이 쌓이게 된다. 그 간격이 벌어질 경우 고소 고발이 일어나고 팀 분위기가 엉망이 된다. 구조적 문제가 개인에게 전가되는 상황인 셈이다.

학원 스포츠 지도자들도 요즘 죽을 맛이라고 아우성이다. A대학 감독은 "우리도 살아야 한다. 학교에서 받는 걸로는 정상적인 생활이 안 된다. 학부모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주는 돈을 받는게 관례가 돼 있다"면서 "요즘 대학 감독은 학생들 취직은 물론이고 최근 C학점 룰로 공부까지 감안해 줘야 한다. 너무 힘들 때는 '내가 왜 여기서 이 일을 하고 있나'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공부하는 운동 선수'를 모토로 내건 정부는 최근 대학 스포츠 선수들에게 평균 C학점 제도를 만들어 대회 출전을 제한하고 있다. 운동만 하지 말고 공부를 해서 평균 C학점 이상을 받으라는 것이다.

또 대학 감독들은 요즘 학생(제자)들의 진로 문제로 고민이 깊다.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신인 드래프트를 할 때는 그나마 대학 축구 선수가 한 해 100명 이상 뽑혀갔다. 그러나 대학축구연맹에 따르면 자유선발제도로 바꾼 뒤에는 클래식(1부) 챌린지(2부) 팀으로 취직하는 대학 선수가 한해 100명이 채 안된다. K리그의 시장 상황을 감안할 때 대학 선수의 취업률은 앞으로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러다보니 대학 감독들은 프로팀들을 대상으로 선수 세일즈까지 해야하는 처지가 됐다. 그 과정에서 학부모들이 모아준 돈이 경비로 지출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대학축구연맹 고위 관계자는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다. 관례적인 걸 하루 아침에 못하도록 막는 건 불가능하다. 학부모들이 돈을 내는 걸 전부 막으면 팀이 운영될 수가 없다. 그러면 학원 축구는 문을 닫아야 한다. 학부모들의 돈이 좀더 투명하게 체계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팀들을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 일부 대학에선 김영란법 적용 이후 학부모들의 돈을 학교 후원금 형식으로 받아 관리하고 있다. 감독이 임의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아놓은 것이다. 대회 출전이나 해외 전지훈련 또는 필요 경비가 있을 경우 청구 절차를 제대로 밟아서 집행하는 식으로 바꿨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