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빛나는 순간, 19년간 동고동락한 K리그 팬들을 향한 감사를 잊지 않았다.
K리그 전인미답의 '70골-70도움'을 달성한 이동국(38·전북 현대), 레전드의 가치는 대기록 직후 팬들과 함께할 때 가장 빛났다.
17일 K리그 클래식 29라운드 포항 원정, 선발로 나선 이동국의 몸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통산 '196골-69도움'으로 '70-70 클럽'에 도움 1개를 남겨둔 이날 전반 41초만에 선제골을 터뜨리며 대기록을 예고했다. 전반 29분, 한교원의 세번째 골에 결정적 도움을 기록했고, 후반 18분 이재성의 골을 도우며 1골 2도움을 기록했다. '197골-71도움'으로 70-70 클럽의 대기록을 달성했다. 이동국의 활약, 이재성의 멀티골에 힘입어 전북은 4대0으로 완승했다. 승점 60점으로 리그 선두를 질주했다.
경기 후 전북 원정 응원석을 향하는 이동국의 걸음을 멈춰세운 건 다름 아닌 포항 유스 후배들과 어린이 팬들이었다. 이동국의 고향은 포항이다. 포항제철중고 출신이자 포항 스틸러스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19년전인 1998년 K리그 유니폼을 입은 곳, 데뷔골을 기록한 곳, 첫 태극마크를 단 곳, '라이언킹'이라는 애칭으로 국민적인 사랑을 받은 바로 그곳에서 '서른여덟'의 골잡이, 최고령 국가대표가 70-70 기록을 세웠다. 'K리그 현역 레전드' 이동국은 포항 팬들과 대기록의 감격을 함께 나눴다. '오둥이' 아버지인 '슈퍼맨' 이동국의 후배 선수, 어린이들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제2의 이동국'을 꿈꾸는 고사리손들에게 사인을 건네고, 포항 원조 팬들과도 손을 맞잡았다.
곧이어 "이동국!"을 연호하는 전북 원정 서포터들을 향했다. 이날 전북 원정 응원단은 '태풍 소식'도 아랑곳않은 채 4대의 대형버스를 나눠타고 스틸야드로 달려왔다. '전주성' 못지 않은, 뜨거운 응원전을 펼쳤다. 전북의 완승, 이동국의 '70-70' 달성에 원정 응원석은 축제 분위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이동국이 손뼉을 치며 감사를 표하자, 팬들이 '자동반사' 몸을 앞뒤로 흔들기 시작했다. 전북의 골, 승리의 순간이면 어김없이 울려퍼지는 승전가, '오오렐레~'의 준비 동작이었다. 팬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못 이긴 척, 이동국의 솔로 '오오렐레~' 세리머니가 시작됐다. 그라운드 안에선 거침없는 '발리장인'이지만, 그라운드 밖에선 낯가림도 심하고, 부끄럼도 많이 타는 이동국이 팬들을 위한 자축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오오렐레~ 오오렐레~" 이동국의 승전가가 스틸야드에 뜨겁게 울려퍼졌다.
이동국은 "고향인 포항에서 기록을 세워 감회가 새롭다. 프로 첫골도 이곳에서 넣었는데, 70-70 기록도 여기서 세웠다"며 남다른 소회를 드러냈다. "19년전 이곳에서 데뷔골을 넣은 상대가 전북이었다. 전북 유니폼을 입고 포항을 상대로 70-70 기록을 세울 줄은 몰랐다"며 미소 지었다. 오늘의 이동국을 있게 한 포항 팬, 전북 팬 모두에게 감사를 전했다. "데뷔 때 열렬히 응원해주신 포항 팬들을 잊지 않고 있다. 전북 유니폼을 입고 전북 팬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경기하는 것도 감사하다. 늘 기쁘게 생각하면서 뛰고 있다."
이동국은 2009년 전북 유니폼을 입은 후 '포항 킬러'로 통했다. 6월 28일 포항 첫 원정(3대1승)에서도 멀티골, 194-195호골을 한꺼번에 쏘아올렸다. 이날 1골 2도움을 더하며, 전북 소속으로 출전한 포항과의 맞대결에서 25경기 16골 5도움을 기록하게 됐다. 스틸야드에만 서면 강해지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동국은 한결같은 원조 팬들의 응원을 떠올렸다. "원정이지만 이 분위기가 제게 낯설지 않다. 마음 편하게 경기할 수 있다. 아직 포항 팬들, 저를 지지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다."
'1강' 전북, 대한민국 대표 공격수로서 19년 전의 초심도 그대로였다. "나는 나가는 경기마다 모든 찬스를 살리고 싶다. 매경기 골을 넣고 싶다. 운동장은 나이를 잊는 공간이다. 선수들과 부딪치면서 늘 즐겁다. 나이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는다. 너무 재밌고 흐뭇하고…. 경기를 뛰는 것이 내게는 너무나 소중하다." 포항=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