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임)상협이가 대표로 유족들께 애도의 뜻을 표하자." 최만희 부산 사장이 눈물을 훔치며 힘겹게 말했다. 오열하는 유족들 앞에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임상협도, 이정협도 모두 훌쩍 거리며 눈물을 흘렸다. 황망하게 떠나버린 스승의 영정 사진 앞에서 부산 선수들이 할 수 있는 말은 아무 것도 없었다.
10일 세상을 떠난 故 조진호 부산 감독의 빈소가 마련된 양산 부산대병원 장례식장에 온 모든 이들의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고개를 숙였다. 어렵게 입을 열때마다 나오는 소리는 같았다. "허~, 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갑작스러운 고인의 죽음이 믿기지 않았다.
가족들의 슬픔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아내는 몸을 가누지도 못했다. 중학생 딸과 초등학생 아들은 눈이 퉁퉁 부엇다. 장례 절차가 한참 늦어진 것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주 역할을 하며 부지런히 움직이던 부산 관계자는 "고인이 살고 있는 서울에도 장례식장을 예약해뒀다. 사모님께서 너무 충격을 받으셔서 부산과 서울 중 어디서 장례를 치를지 정하지 못했다. 조 감독님의 장모님께서 부산에서 치르자고 하셔서 뒤늦게 장례식장을 결정했다"고 정했다.
갑작스러운 소식, 뒤늦게 정해진 장소 때문에 첫 날 빈소에 찾아온 손님은 많지 않았다. 고인을 아꼈던 한웅수 프로축구연맹 총장과 같은 날 있었던 K리그 클래식 상위스플릿 미디어데이에서 눈물을 훔쳤던 조성환 제주 감독이 일찌감치 장례식장을 찾았다. 이후 고인을 기리는 발길은 멈추지 않았다.
가장 분주했던 이는 부산의 사장이자 조 감독의 스승이었던 최만희 사장이었다. 최 사장은 연신 눈물을 훔치며 손님을 맞이했다. 그는 "경남전이 끝나고 아무 말도 안했다. 경기에 진 아픔은 내가 누구보다 잘안다. 기다려주려고 했는데…"고 말을 잇지 못했다. 조 감독의 동료 감독들이 찾아오자 인생 선배로서 다시 한번 건강을 강조, 또 강조했다. 최 사장은 "우승이고, 승격이고 건강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누구보다 힘든 길임을 알기에 자기 스스로 챙겨야 한다"고 했다.
부산 직원들도 함께 빈소에서 일을 거들었다. 저마다 조 감독과의 사연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충격을 받은 것은 부산의 구단주이자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도 마찬가지였다. 최 사장은 "회장님께 보고를 드렸더니 너무 크게 놀라시더라. 대표팀 일정, 이후 국제축구연맹(FIFA) 관계자들과의 미팅이 있어서 자리하시지 못했지만 다른 직원을 통해 유족들의 슬픔을 위로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이야기 하셨다"고 했다.
첫 날 가장 오래동안 빈소를 지킨 것은 조 감독의 동기들이었다. 청소년 대표팀부터 함께 했던 최용수 전 서울 감독, 유상철 울산대 감독 등이 일찌감치 빈소를 찾아 자리를 지켰다. 최 감독은 "하루종일 멍하더라. 진호의 빈소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며 "영혼이 맑은 친구였다. 그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잊을 수가 없다. 군생활 때부터 톰과 제리라고 불렸다. 그런 친구가 일찍 떠나서 너무 슬프다"고 슬퍼했다. 유 감독도 "불과 몇일 전에 울산대와 부산이 연습경기를 했다. 경남을 무척 이기고 싶어했다"며 "강해 보이는 친구였지만 마음이 여렸다. 혼자서 그 스트레스를 다 감당했을거라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더 아프다"고 안타까워했다.
조 감독이 키워낸 제자들도 서둘러 빈소를 찾았다. 부산 선수들은 물론 대전, 상주 등에서 조 감독이 키워낸 제자들은 하나 같이 충격적인 표정이었다. 저마다 소속팀은 달랐지만 열일을 제치고 양산까지 내려왔다. 조 감독 밑에서 부활한 박준태는 "여름이었다. 감독님이 사모님께 양파즙을 받으셨다. 그때 내가 부진했을때인데, 부르시더니 '준태야 이거 먹고 힘내라'며 반을 떼어주시더라. 그간 잘못했던 일만 생각이나서 더 힘들다"고 눈물을 훔쳤다.
새벽이 될때까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K리그 감독들을 비롯해 축구인들 모두 같은 표정이었다. 촉망받는 젊은 지도자이자 누구보다 밝았고, 참 착했던 조 감독을 알기에 한숨만을 내쉬었다. 조 감독은 김해에서 화장한 뒤 일산의 납골당에 안장될 예정이다.
양산=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