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A대표팀의 훈련 전 분석미팅 시간은 최소 15분에서 최대 20분이었다. 미팅을 오래한다고 해서 '득' 될 것이 없었다. 오히려 선수들의 집중력을 떨어뜨릴 수 있었다. 그래서 포인트가 되는 부분만 발췌해 선수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7일 수원월드컵보조구장에서 벌어진 오픈트레이닝 전 분석미팅 시간은 역대 가장 길었다. 이례적으로 1시간 정도 진행됐다. 미팅을 주도한 건 스페인대표팀 수석코치 출신인 토니 그란데 코치였다. 전문가는 달랐다. 하비에르 미냐노 코치와 함께 지난 3일 입국해 한국 축구에 적응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미팅 준비는 철저하게 했다. 특히 최근 스페인-콜롬비아의 친선경기 영상을 구해와 구체적인 상대 분석을 진행했다. 미드필더 이재성(25·전북)도 "훈련 전 그란데 코치와 미팅을 했다. 그란데 코치는 자신이 스페인에 있을 때 콜롬비아를 상대했던 영상을 보여주더라. 경험적인 부분에 기대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란데 코치께서 구체적으로 말씀을 해주시더라. 특히 하메스가 특출난 선수라고 지목해줬다. 경기 준비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피지컬 코치로 알려진 미냐노 코치는 유럽축구연맹(UEFA) A급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는 전술의 대가이기도 하다. 스페인대표팀에선 비센테 델 보스케 감독과 그란데 수석코치 다음으로 두 번째 코치였다. 유도 선수 출신인 미냐노 코치도 '베테랑'다웠다. 11월 A매치 2연전을 위해 발탁된 23명 태극전사들의 이력을 꿰고 있었다. 대표팀 관계자는 "이정협의 소속팀까지 알고 있더라. 성이 비슷해 한국인들 이름을 외우기 쉽지 않은데 이미 다 외웠더라"며 엄지를 세웠다.
특급 조력자들의 합류로 분위기가 밝아진 신태용호의 화두는 두 가지다. '손흥민'과 '투지' 살리기다. 손흥민은 자타공인 신태용호의 주포다. 그러나 토트넘에서의 '하얀 손흥민'과 대표팀에서의 '빨간 손흥민'은 180도 다르다. 소속팀에서의 맹활약이 좀처럼 대표팀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월드컵 최종예선에선 단 한 골밖에 터뜨리지 못했다. 때문에 신태용 A대표팀 감독은 손흥민의 포지션을 측면에서 중앙으로 옮기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윙포워드 대신 섀도 스트라이커의 역할을 맡길 예정이다.
손흥민 부활이 절실한 시점에서 도우미가 나타났다. 7개월 만에 태극마크를 단 이정협(26·부산)이다. 이정협은 "흥민이와 경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흥민이가 살아날 수 있다"며 "토트넘 경기도 많이 봤다. 내가 잘 준비한다면 손흥민이 토트넘에서 보여주고 있는 활약이 대표팀에서도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협이 롤모델로 삼은 선수는 토트넘의 원톱 해리 케인이다. 이정협은 "케인처럼 위에서 내가 많이 싸워줘 흥민이가 찬스를 잡을 수 있도록 돕겠다"며 희생을 다짐했다.
태극전사들은 진정한 '전사'로 탈바꿈을 예고했다. 그란데 코치는 한국 축구의 첫 인상에 대해 "너무 순하게 축구한다"고 지적했다. 모든 선수들의 공감을 산 발언이었다. 이에 대해 이재성은 "한국 축구의 투지를 보여줄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라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정협 역시 "더 거칠고 투지 있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수원=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