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3일(이하 한국시각) 중국 창사.
'축구 굴기(일으켜 세움)'의 날이었다. 슈틸리케호는 중국 원정에서 0대1로 패했다. 결과 뿐만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완패였다. 북한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배치한 '사드'를 놓고 중국 정부 주도로 혐한 감정이 불붙던 시기, 축구를 통해 중국의 오만함을 징벌해주리라던 팬들의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반면 실낱같이 남았던 공한증(恐韓症)마저 날려버린 대륙의 팬들은 포효했다. 한국 축구 '굴욕의 날'이라고 부를 만했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A대표팀은 8일 오후 4시30분 도쿄 아지노모토스타디움에서 중국과 2017년 동아시안컵 첫 경기를 갖는다. 마르셀로 리피 중국 대표팀 감독은 지난 3월과 달리 신예들을 다수 포함시켜 신태용호와의 맞대결을 준비 중이다. 신태용호는 '공한증은 영원하다'는 점을 중국 축구계에 확실히 각인시켜주겠다는 각오다.
압박으로 기를 죽여라
중국전 패배의 이유는 간단했다. 점유율에 치중한 나머지 느슨하게 상대하면서 '기를 살려준 것'이 패인이었다. 중국은 점유율을 내주고 역습으로 '잽'을 날리다 결국 세트피스로 득점을 만들어냈다. 선제골을 얻은 뒤엔 수비라인을 내린 채 다급해진 슈틸리케호의 빈틈을 노렸다.
신태용호의 반전을 이끈 '압박'이 중국전에서도 돌파구를 만드는 요소가 될 것이다. 11월 A매치 2연전에서 콜롬비아, 세르비아를 상대로 쉴새없이 압박을 전개하면서 가능성을 보여줬다. 지난달 27일 울산 소집 훈련 이후에도 신 감독은 폭넓은 활동량을 바탕으로 꾸준하게 압박을 전개하는 전술을 다지는데 공을 들였다.
관건은 지속성이다. 90분 내내 압박을 전개하기 위해선 엄청난 체력이 필요하다. 이번 동아시안컵에 나서는 선수 대다수가 시즌 일정을 마친 뒤 피로가 누적된 상황. 하지만 초반 압박을 통해 이른시간 선제골을 얻는다면 압박 강약 조절을 통해 흐름을 쥘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패스는 최고의 무기다
리피 감독은 23명의 동아시안컵 출전명단을 대다수 신예로 채웠다. 하지만 수비라인 만큼은 장린펑과 리슈펑(이상 광저우 헝다), 장지펑(광저우 부리), 정정(산둥 루넝) 등 그동안 대표팀에서 꾸준히 활약했거나 새롭게 발굴해 중용 중인 선수들을 포함시켰다. 실험적이 전개를 하되 실점 만큼은 최소화 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런 리피 감독의 의표를 찌를 무기는 패스를 통한 '공간파괴'다. 패스 콤비네이션을 통한 뒷공간 공략은 밀집수비를 깨는 최고의 무기다. 경험 있는 선수들이 포진한 중국 수비라인을 공략하기 위해선 빠른 템포의 패스 전개를 통해 공간을 확보하는게 중요한 포인트다.
신 감독은 '공격적인 빌드업'을 들고 나올 것으로 보인다. 수비라인에서 좌우로 의미없이 볼을 돌리며 상대 수비라인을 끌어내기 보다 전방으로 볼을 전개하면서 원터치 패스로 좌우를 공략하며 쉴새없이 상대 수비라인을 흔드는 전략을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윙백들의 오버래핑이나 측면 공격수들의 인사이드 돌파까지 제대로 이뤄지면 효과는 더 커질 전망이다. 이명주(FC서울) 이재성(전북 현대) 이근호(강원FC) 이창민(제주) 등 2선 공격라인 구성이 테크니션들로 채워진 부분도 패스를 통한 수비 뒷공간 공략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여우' 리피? 주눅들 필요 없다!
리피 감독은 지난 3월 슈틸리케호를 철저하게 해부해 승리를 이끌어냈다. '점유율'에 매몰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했다. 이번 한국전에서도 겉으로는 '실험'을 들고 나올 것으로 보이나 초점은 '역습과 세트피스를 통한 승리'로 잡을 것이다.
그라운드 바깥에서 리피 감독의 능력은 더욱 빛을 발한다. 유려한 화술로 상대를 추켜세우는 듯 하나 그 안에는 칼이 숨어 있다. 선수 교체와 전술 변화를 통해 불리한 상황을 단 한번에 뒤집는다. 상대 감독과 선수의 심리를 교묘하게 교란하는 심리전도 그의 무기다.
세계적 무대서 커리어를 쌓은 리피 감독. 신 감독이 주눅들 필요는 없다. 오히려 취임 4개월 동안 팀 재정비로 인해 신 감독이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지 못한 점은 리피 감독이 이번 한국전을 준비하는데 적잖은 어려움으로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중국을 상대로 진 '빚'을 갚는다는 동기부여 역시 전력 이상의 힘을 낼 만한 요소다.
본선으로 가는 첫 걸음, 중국전 쾌승은 신태용호의 분위기를 잡기에 충분한 성과물이다. 여전히 한국 축구는 중국보다 우월하다는 점은 도쿄에서 증명될 것이다.
도쿄(일본)=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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