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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봅슬레이]故 로이드는 바닥을 다졌고, 루더스는 새 역사 '기폭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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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아시아 봅슬레이 역사상 최초의 메달. 고(故) 데니스 말롬 로이드 코치가 바닥을 다졌고, 피에르 루더스 코치는 새 역사의 '기폭제'였다.

원윤종(33)-전정린(29·이상 강원도청)-서영우(27·경기도BS경기연맹)-김동현(31·강원도청)으로 구성된 봅슬레이 4인승은 25일 평창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에서 열린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3~4 차 시기 주행을 마쳤다. 1, 2차 시기에서 1분37초84로 29개 팀 중 2위에 자리했던 한국 봅슬레이 남자 4인승은 3, 4차 시기에서도 쾌조의 흐름을 이어가며 메달을 거머쥐었다. 2010년 밴쿠버올림픽 강광배-이진희-김동현-김정수가 최초로 올림픽 무대에 밟아 19위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불과 8년만에 이룬 쾌거다. 한국은 지난 소치올림픽 땐 20위를 기록했다. 당시 원윤종-전정린-석영진-서영욱 조가 나섰다.

한국과 아시아 봅슬레이 역사를 새로 쓴 남자 4인승. 그 뒤엔 두 명의 '푸른 눈 코치'의 헌신이 있었다.

시작은 로이드 코치였다. 영국 출신 로이드 코치는 지난 2013년 한국 봅슬레이대표팀에 영입됐다. 그 때만 해도 반대 여론이 극심했다. 세계 최고의 지도력을 갖췄지만, 너무 고지식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우려는 기우였다. 로이드 코치는 팀에 합류한 뒤 선진 훈련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전세계에 존재하는 각기 다른 15개 트랙에 대한 코스 공략법과 장비 관리 방법까지 세밀하게 지도했다. 그 결과 변방에 불과하던 한국은 2015~2016시즌 세계랭킹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여기에 만족할 순 없었다. 로이드 코치는 2018년 평창올림픽을 바라보고 있었다. 팀도 혼연일체로 구슬땀을 흘렸다. 그러나 비보가 날아왔다. 2016년 1월. 로이드 코치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몸은 떠났지만, 혼은 함께 했다. 4인승은 물론 2인승에서도 호흡을 맞추는 원윤종-서영우는 로이드 코치를 추모하기 위해 '곰머(로이드 코치의 별명)'에서 딴 첫 번째 영어 이니셜 'G' 스티커를 헬멧과 썰매에 붙이고 평창올림픽 봅슬레이 2인승 1차 시기 주행을 했다. 이에 앞서 썰매대표팀은 로이드 코치 사망 직후 치러진 국제 대회에서도 'G'를 새긴 썰매로 주행을 펼쳤다.

한국 봅슬레이의 바닥을 다졌던 로이드 코치의 공백. 그 빈 자리를 루더스 코치가 채웠다. 썰매대표팀은 지난해 3월까지 프랑스 출신 에릭 엘러드 코치에게 주행 기술을 배웠다. 그러다 계약을 해지하고, '금메달 사냥꾼' 루더스 코치의 손을 잡았다. 평창올림픽 메달의 '기폭제'가 된 만남이었다.

루더스 코치의 경력이 화려하다. 1998년 나가노올림픽 금메달리스트다. 은퇴 후 지도자로 변신한 루더스 코치는 '우승 청부사'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 러시아대표팀의 주행 코치로 2개의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기여했다. "내가 가진 모든 걸 한국에 쏟아 붓겠다"는 말과 함께 루더스 코치는 한국 대표팀에 합류했다.

루더스 코치는 썰매 대표팀에 자신의 모든 노하우를 전수했다. 그 과정에서 선수들의 주행 능력은 폭발적으로 신장됐다. 그리고 2018년 평창올림픽. 한국 봅슬레이가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올림픽 봅슬레이 메달 획득. 동계 올림픽 강국으로 불리는 일본도 해내지 못한 일이다. 일본은 1972년 삿포로올림픽을 통해 첫 봅슬레이 출전을 한 이후 단 한 번도 메달을 거머쥐지 못했다. 그 뒤를 이어 1984년 출사표를 던졌던 대만도 마찬가지다. 아시아에 허락되지 않을 것만 같던 올림픽 봅슬레이. 그 두꺼운 벽을 한국이 깨뜨렸다. 로이드 코치가 다져둔 바닥을 딛고, 루더스 코치를 만나 꽃 피웠다.

평창=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