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김종민 감독(44)은 남자부 대한항공 지휘봉을 내려놓고 사무직으로 복귀할 예정이었다. 김 감독은 1996년부터 대한항공 직원 신분이었다. 코치 시절에도 사무직 생활을 잠깐 한 적이 있었다. 한 달 정도 쉬었을 때 김 감독에게 운명의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여자부 한국도로공사 관계자였다. 자신에게 러브콜을 던지는 전화였다.
깜짝 놀랐다. 같은 배구이긴 해도 여자팀은 생소했다. 지난 20년간 선수로, 지도자로 남자 무대에만 종사했기 때문이다.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 변수를 따져봐야 했다. 타팀 사령탑들은 이미 여자팀에 잔뼈가 굵고 지도 경력도 풍부했다. 자신이 여자배구계에 뛰어드는 건 마치 대학선수와 초등학교 선수가 맞붙는 것과 같은 경우였다.
흡사 지난 2013년 1월 대한항공을 이끌기 시작했을 때의 상황과도 비슷했다. 갑작스러웠다. 당시에도 대한항공을 이끌던 신영철 감독이 시즌 도중 예기치 않게 떠나면서 김 감독이 팀을 맡게 됐다. 준비 없이 달려든 도전이었다.
김 감독은 또 다시 도전을 택했다. 스스로도 도전을 좋아하는 스타일이긴 하지만 대한항공이란 안정된 직장을 뿌리치고 가시밭길을 택한 건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었다. 바로 '배구'였다. 김 감독은 계속해왔던 배구를 떠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여자팀이지만 배구를 할 수만 있다면 어떠하리'란 생각을 가졌다.
모든 이들에게 '처음'은 두렵기 마련이다. 김 감독에게도 고정관념이 있었다. 여자 선수들의 성격이 까칠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와서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남녀 성향상 여자 선수들이 약간 예민한 건 있지만 남자 선수들을 지도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아내의 조언도 큰 도움이 됐다. 여자 선수들에게 세심하게 신경 써주고 그 때 그 때 칭찬을 아끼지 말라는 것이었다. 아내의 말대로 할 말이 있을 때 순간하고 넘어가니 잡음이 생기지 않았다.
김 감독에게 가장 중요한 건 선수들과의 신뢰였다. 선수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소통을 하며 지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첫 시즌 시행착오를 잇따랐다. 그가 받아 든 성적표는 6개 여자팀 중 꼴찌였다. 그러나 많이 배웠다. 우선 이겨야 대우를 받는다는 걸 느꼈다. 성적이 무조건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좋은 성적이 가장 첫 번째라는 걸 깨달았다.
특히 김 감독은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높일 수 있는 공부도 했다. 감독으로서 선수단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선수들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터득했다. 그리고 큰 그림을 시즌마다 정밀하게 완성하는 것에 대해 절실히 느꼈다.
또 선수들의 심리적인 치유에 대해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자신은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문제가 여자팀에선 큰 사건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 시즌 김 감독이 열을 올린 것이 신뢰 회복이었다. 그러자 분위기가 좋아졌고 자연스럽게 성적도 따라왔다.
IBK기업은행에서 자유계약(FA)로 영입한 박정아를 살려낸 것도 김 감독의 역량 중 하나였다. 박정아는 도로공사 유니폼을 갈아입은 뒤 리시브에 대한 부담을 많이 느꼈다. 김 감독은 "하루 아침에 바뀌는 것이 아니다"라며 부담감을 덜어주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 박정아가 못하는 것보다 잘 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공격이었다. 걸출한 외국인 공격수 이바나가 있었지만 박정아에게 해결 기회를 더 부여했다.
이번 시즌 박 감독은 '재미있는 배구'로 선수들의 의식을 변화시켰다. 다 같이 소리 지르고 함께 하는 배구, 부담감을 내려놓고 우승이라는 목표는 가슴 속에 깊이 숨겨두고 매 경기 열심히 한 만큼 즐기는 배구가 김 감독이 선수들에게 바라는 배구였다.
극과 극의 반전이다. 꼴찌에서 1년 만의 챔피언에 등극했다. 그렇게 좋은 감독이 돼 가고 있는 김 감독의 지도자 인생에 화려한 꽃이 피고 있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