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예사 보는 줄 알았어요."
농을 섞은 큰 웃음을 터뜨렸지만 간담은 서늘했다는 표정이었다.
넥센 히어로즈 박병호(32) 때문이다. 박병호는 10일 울산 문수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두 차례나 부상으로 직결될 수 있는 아찔한 장면을 연출했다. 팀이 2-3으로 뒤지던 5회말 1사 1루에서 앤디 번즈가 넥센 선발 한현희의 5구째를 쳤다. 1루쪽 파울라인으로 높이 뜬 타구는 관중석으로 넘어가는 듯 싶었지만 이내 롯데 벤치로 향했다. 그대로 파울이 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끝까지 쫓아간 박병호가 글러브를 내밀었다. 하지만 공은 잡지 못했고 롯데 덕아웃 앞 기둥에 몸이 걸리면서 그대로 넘어갔다. 360도 회전한 몸이 그대로 덕아웃으로 떨어지는 듯 했으나 박병호는 오른손으로 의자를 짚은 뒤 유연하게 넘어가 탄성을 자아냈다. 서둘러 자리를 피했던 롯데 선수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으나 박병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툭툭 털고 다시 1루로 복귀했다. 공교롭게도 한현희가 곧이어 던진 6구째를 번즈가 걷어올렸으나 똑같은 상황이 연출됐다. 박병호는 이번에도 덕아웃 쪽으로 달려갔고, 또다시 벤치 기둥에 몸이 걸려 넘어갔으나 공을 잡아내며 파울플라이 아웃을 만들어내는 집념을 연출했다. 5회말 선두타자 채태인에게 역전 솔로포를 얻어맞았던 한현희는 번즈와 신본기를 돌려세우며 추가 실점 없이 이닝을 마쳤다.
뛰어난 승부욕과 집중력을 보여준 제자의 수비는 스승 입장에선 흐뭇한 일이다. 하지만 지나친 의욕이 부상으로 연결된다면 더 큰 손해가 된다. 팀의 중심인 4번 타자인 박병호이기에 장정석 감독 입장에선 더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장정석 감독은 "두 장면 다 너무 놀랐다. 곡예사를 보는 줄 알았다"고 웃은 뒤 "본인은 괜찮다고 했지만 지켜보는 다른 사람들 입장에선 가슴이 철렁했을 것"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는 "매 경기 집중력이나 승부욕에서 과연 박병호를 능가하는 선수가 몇 명이나 될 지 모르겠다"며 "별다른 말이 필요없는 선수"라고 강한 신뢰를 드러냈다.
박병호는 지난 4일 KT 위즈전에서 시즌 3호포를 때려낸 뒤 홈런을 추가하지 못하고 있다. 안타 역시 7일 KIA 타이거즈전 이후 3경기째 무소식이다. 중심 타자인 박병호의 부진은 곧 넥센의 득점력 침체와도 연결된다. 박병호의 부진과 최근 4연패가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는 이유다.
장정석 감독은 "(박병호의 최근 활약이) 안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팀 타선이 전체적으로 침체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박병호의 활약 여부에 따라 승패가 갈리면 안된다. 박병호가 부진하다면 다른 선수들이 터져줘야 한다"며 "박병호는 슬로스타터에 가까운 타입이다. 올 시즌 초반 좋은 활약을 해서 최근 부진이 좀 더 두드러져 보일 뿐이다. 시간을 갖고 기다려주는게 맞다"고 짚었다.
울산=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