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um App

Experience a richer experience on our mobile app!

눈시울 붉어진 'FC서울 맏형' 곽태휘의 진심

by

"준비는 열심히 했는데…."

그라운드 위 전·후반 90분.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울수 밖에 없는 치열한 승부의 세계. 수많은 경험을 쌓아도, 일희일비 하지 않으려 갈고 닦아도 좀처럼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 것. 승부의 냉정함이다.

'서울의 맏형' 곽태휘 역시 마찬가지다. 2005년 서울 유니폼을 입고 데뷔한 이후 벌써 10년 넘게 프로 무대를 누비고 있다. 태극마크도 달아봤고, 해외리그도 경험해 봤다. 그러나 승패 갈림길에서의 평정심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일까. 6경기 만에 첫 승리를 거머쥔 곽태휘의 목소리에는 기쁨과 안도의 떨림이 동시에 묻어났다.

첫 승리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서울은 개막 5경기에서 3무2패를 기록하며 11위에 머물렀다. 성난 팬심은 "정신차려, 서울!"을 외쳤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1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포항과의 2018년 KEB하나은행 K리그1 6라운드 홈경기는 팬들의 마음을 돌릴 마지막 기회였다.

"내가 팀 내 맏형이다. 경기가 잘 되지 않을 때, 흐름이 좋지 않을 때 받는 스트레스가 있다. 솔직히 심리적으로 압박이 심하다. 그러나 힘들다고 후배들에게 표현할 수는 없다. 그저 후배들이 열심히 따라올 수 있도록 그라운드 위에서 더 열심히 달릴 수밖에 없다. 경기장에서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동생들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맏형이기에 짊어질 수밖에 없었던 무거운 짐. 곽태휘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달렸다. 상대의 거친 몸싸움에 부딪치고 쓰러지기 일쑤였지만, 금방 툭툭 털고 일어나 빠르게 달려 나갔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적극적인 슈팅으로 포항의 골문을 노렸다.

곽태휘의 간절함은 동료 후배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졌다. 서울은 경기 시작 9분 만에 상대에 선제골을 내줬지만 2골을 뽑아내며 기어이 2대1 역전승을 거뒀다. 개막 6경기만에 상암벌에 올려퍼진 "이겼다" 외침이었다.

경기 후 곽태휘의 눈시울은 붉게 충혈 돼 있었다. "포항전 준비를 열심히 했는데, 빠른 시간에 실점을 했다. 그래도 선수들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한 마음으로 뛰었다. 그게 첫 승리라는 결과로 돌아온 것 같다. 그라운드에서 함께 뛴 선수들, 믿고 응원해준 팬들을 보니 정말 기뻐서 뭉클했다."

사실 이날 경기 하프타임에는 곽태휘를 위한 특별한 이벤트가 준비돼 있었다. 바로 200경기 출전 기념식이었다. 1일 인천과의 4라운드 홈경기에 선발 출전한 곽태휘는 200경기 출전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이벤트는 진행되지 않았다. 자신의 200경기 출전보다 팀의 첫 승리가 더욱 중요했기 때문. "200경기라고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팀이 빨리 승리해서 잘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팀을 위해 준비하고 뛸 것이다. 우리 팀이 잘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한국 나이 서른여덟. 이제 막 거둔 승리다. 곽태휘의 축구 시계는 쉬지 않고 내일을 향해 달려간다. "나이가 들면서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은 있다. 그러나 나는 아직 축구선수다. 나이 때문에 뒤처진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지도 않다. 내가 솔선수범해야 후배들도 뭔가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축구선수를 그만두는 그 순간까지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다."

곽태휘의 얼굴에 비로소 미소가 슬그머니 피어올랐다. 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