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의 우천취소는 프로야구 구단들에게는 전력을 재정비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마치 F1 레이싱 경기에서 볼 수 있는 '피트-인'과 같은 효과를 지닌다. 피트 인을 통해 마모된 타이어도 갈고, 연료도 다시 채우고 나면 금세 경쟁자들을 따라잡을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뛰어난 레이싱 팀일수록 '피트-인'을 잘 활용하는 법이다.
넥센 히어로즈도 드디어 이런 기회를 얻었다. 돔구장을 홈으로 쓰는 팀의 숙명 때문에 넥센은 올 시즌 우천 취소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일단 안방에서 잡힌 경기 일정은 100% 소화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원정에서 기대해볼 수 있는데 올해는 그마저도 잘 안됐다. 10개 구단 중 가장 많은 경기수를 소화한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모처럼 만난 우천 취소는 넥센 입장에서는 큰 호재다. 지난 6월30일 대구 삼성전이 우천 취소된 것이다. 꼭 필요한 타이밍에 기막히게 우천 취소로 시간을 벌게 됐다. F1 레이싱으로 치면 타이어가 완전히 마모되어 가던 시점이다. 여기서 다시 피트-인을 통해 새로운 타이어를 갈아 끼우고 힘차게 가속 페달을 밟을 기회가 생긴 것이다.
넥센의 입장에서는 붕괴되다시피 한 선발 로테이션을 재정비하고, 나아가서는 불펜까지 조정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 1일 경기마저 취소된다면 다음 주부터는 완전히 새로 탈바꿈한 로테이션이 가동될 수 있다. 에릭 해커가 곧바로 로테이션에 들어오게 되기 때문이다.
일단 1일 경기마저 취소된다면 베스트다. 이러면 제이크 브리검을 한번 더 아껴 다음주 초부터 가동할 수 있다. 이후에는 신재영-한현희-최원태 순서로 충분한 휴식상태에서 선발진을 투입하게 된다. 대신 변수는 김동준이다. 해커가 준비된 상황에서 김동준을 굳이 선발에 남겨둘 이유가 없다. 애초 김동준에게 장정석 감독이 기대한 바는 불펜이었다. 최근 불펜이 지속적으로 불안한 상태이기 때문에 김동준의 불펜 복귀는 또 다른 호재가 될 수 있다.
만약 1일 경기를 치른다 해도 나쁘지 않다. 예정대로 브리검이 1일에 나오고 3일부터는 다시 신재영 한현희 최원태가 순서대로 나오면 된다. 마찬가지로 김동준이 불펜으로 돌아간다. 손가락에 물집이 잡힌 신재영은 손가락 상태에 따라 등판일 조정이 가능하다. 역시 해커의 투입이 가능해지면서 날짜 조정에 여유가 생긴 덕분이다. 해커를 3일쯤 중간계투로 1이닝 정도 던지게 한 뒤에 주말에 선발로 내보내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어쨌든 활용 가능한 경우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넥센에는 이득이다. 넥센 마운드는 다시 높아질 수 있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