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참의 존재 이유, 전성기 모습이 아니라도 괜찮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선배답다는 전제 하에 선배로서 존재 의미가 있다. 후배들에게 선배는 '곁눈질 배움'에 있어 꼭 필요한 존재다. 선배를 보고 배우는 것은 코치에게 듣고 배우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이다. 존재 자체가 살이 있는 스승이다.
텍사스 내야수 루그네드 오도어(25)에게 추신수(37)가 그런 존재다. 오도어는 무려 12살 차이 나는 추신수를 평소 잘 따른다. 이미 성공한 메이저리거 선배로부터 야구를 대하는 자세, 자기 공을 만들어 치는 법 등 많은 것들을 배운다.
하지만 오도어에게 모든 선배가 스승인 것은 아니다. 인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느끼는 선배는 오히려 응징 대상이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올스타 출신 호세 바티스타(39)다. 수년 전 오도어는 과도한 배트 플립으로 상대를 자극한 바티스타를 벼르고 있었다. 마침 때가 왔다. 내야 수비 도중 거친 태클로 치고 들어온 바티스타와 시비가 붙었고 오도어는 주저하지 않고 그의 얼굴에 강펀치를 먹였다. 두고두고 회자가 된 '난투극'이었다.
그만큼 오도어는 피 끓는 열혈 청년이다. 야구 스타일도 거칠다. 공이 눈에 보이면 참지 않고 시원시원하게 돌린다. 장타를 생산해 내지만 그만큼 확률이 떨어진다. 출루율도 점점 낮아질 수 밖에 없었다. 확률 저하는 그를 고민에 빠뜨렸다. 그에게 선구안과 꾸준함은 최대 화두였다.
우여곡절을 겪고 맞이할 올시즌, 희망이 보인다. 그 변화의 중심에 바로 추신수가 있다. 타석에서 보여주는 '출루머신' 추신수의 인내심을 배우며 다른 선수로 거듭나고 있다.
미국 매체 '스타텔레그램'은 오도어의 변화 과정에 주목했다. 변곡점은 지난 시즌이었다. 그는 4월 햄스트링 문제로 난생 처음 부상자 명단(DL)에 올랐다. 몸에 좋은 쓴 약이 됐다. TV로 타석에서 추신수의 모습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이후 그는 투수의 공이 아닌 타자의 공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오도어는 "2018년은 내게 정말 중요한 한해였다. 난생 처음 DL에 올라 TV로 게임을 보는게 내겐 정말 힘겨운 일이었다. 하지만 정말 많은 것을 깨닫게 된 시기였다"고 회고했다.
슬럼프의 이유는 단순하다. 나쁜 공에 배트가 나가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슬럼프가 온다. 하지만 훌륭한 타자는 슬럼프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안다. 타석에서 어떤 공에 스윙해야 하는지에 집중한다. 오도어에게는 이런 노하우가 없었다. 가장 많은 경기에 나선 2017년, 홈런을 30개나 쳤지만 타율은 0.204에 불과했다. 출루율은 0.252. 삼진을 162개나 당하는 동안 볼넷은 고작 32개 골라냈다.
그야말로 '최악의 공갈포'였던 셈.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나는 공을 따라다니기 급급했던 그가 DL 이후 변하기 시작했다. 타석에서 차분하게 자기가 칠 수 있는 공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타격코치에게서도 들은 내용이었지만 결정적인 계기는 추신수였다. 타석에서 고집스러울 만큼 자기 공을 골라치는 그의 모습을 유심히 보던 오도어는 '유레카'를 외쳤다. 당장 추신수에게 달려 갔고 돈과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조언을 들었다.
이후 오도어는 추신수 처럼 자신이 기다리지 않는 공을 내버려 두기 시작했다. 결과는 놀라왔다. 볼넷이 역대급으로 늘기 시작했다. 43개의 볼넷 중 22개는 7,8월에 골라낸 수치였다. 18개의 홈런 중 13홈런이 이 시기에 나왔다.
"의도적으로 걸어나가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저 내 공을 골라 치려고 했을 뿐이죠.나쁜 공에 스윙하지 않게 되니 투수에게 내가 원하는 공을 던지도록 할 수 있었죠. 시즌 후반 많은 도움이 됐어요."
확 달라진 터프가이 오도어. 그에게 52경기 연속 출루 기록 보유자 추신수는 친한 선배이자 야구 인생에 전환점을 마련해준 귀인 같은 스승이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