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코미티히스타디움(세르비아 베오그라드)=이준혁 통신원]축구 인생, 가장 힘겨운 상황에서 가장 위대한 기록을 썼다.
손흥민은 7일(한국시각)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라이코미티히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2020시즌 유럽챔피언스리그(UCL) 조별리그 4차전 토트넘-츠르베나 즈베즈다 전에서 2골을 몰아쳤다. 유럽 통산 122-123호골을 한꺼번에 기록하며 '분데스리가 레전드' 차범근 전 국가대표 감독의 121골을 넘어섰다. 한국 선수 유럽 무대 최다골, 대기록이었다.
손흥민은 지난달 23일 츠르베나 즈베즈다와의 유럽챔피언스리그 홈경기에서 멀티골로 개인 통산 득점 121골을 기록하며 차범근 전 감독과 타이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이후 대기록까지의 길은 험난했다. 이후 리버풀 원정에선 골대를 두 차례나 때리는 불운을 겪었다. 지난 3일 에버턴 원정에서는 안드레 고메스에게 백태클을 가하며 퇴장의 아픔을 겪었다. 고메스는 넘어지면서 오리에와 엉키며 발목을 다쳤다. 손흥민은 레드카드를 받았다. 고메스의 발목이 돌아간 충격적인 광경을 목도한 후 손흥민은 머리를 감싸고 괴로워하며 라커룸에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러나 5일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손흥민의 레드카드와 3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철회했다.
아찔한 사고 이후 불과 나흘만에 그라운드에 나선 이날 경기에서 손흥민은 강인한 프로 정신과 따뜻한 인간미를 동시에 보여줬다. 한국 축구의 새 역사를 썼고, 멀티골로 팀의 시즌 첫 원정 승리를 이끌었다. 무엇보다 시선을 끈 것은 손흥민의 세리머니었다. 1-0으로 박빙의 우세를 유지하던 후반 분, 손흥민은 팀의 두번째 골을 넣고난 뒤 세리머니를 자제했다. 두손을 모으는 기도 세리머니로 고메스를 향한 사과의 세리머니, 쾌유를 기원하는 세리머니를 했다.
경기후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토트넘 감독 역시 손흥민을 극찬했다. "손흥민이 빨리 회복했다. 두 골을 넣었고 팀 승리에 큰 도움을 줬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손흥민은 강한 멘탈을 증명했다. 오늘밤 보여준 그의 활약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라이코미티히스타디움(세르비아 베오그라드)=이준혁 통신원, 전영지 기자
그라운드에서 의도치 않게 상대에게 부상을 입힌 후 손흥민은 자신의 실수를 누구보다 뼈아프게 인정했다. 그러나 프로로서 해야할 본분을 잊지 않았다. 승리가 반드시 필요한 경기에서 멀티골을 터뜨렸고, 골 직후 진심을 다해 사과하는 동료애를 보여줬다. 최악의 위기를 또다시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내는 '강한 멘탈'을 보여줬다.
대한축구협회에서 선수들의 심리상담을 도맡아온 윤영길 한체대 교수는 사고 직후 "손흥민이 잘 이겨낼 것"이라면서 "이 정도로 심하게 흔들릴 정도의 멘탈이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다"고 했었다. 유럽 무대에서 매경기 주전경쟁에서 살아남고, 세계 최고의 리그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모두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고, 세계 최고의 선수들만이 이름을 올리는 발롱도르 후보 리스트에 오르고, 한국선수 유럽리그 최다골을 신고하기까지, 지난 10년을 굳세게 버텨온 그의 강인한 멘탈이 가장 힘겨운 순간 가장 눈부시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