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그야말로 고통의 시간, 고난의 시간, 지옥의 시간이다.
코로나19 사태로 극장 개봉을 포기한 후 넷플릭스 공개를 선언한 추격 스릴러 영화 '사냥의 시간'(윤성현 감독, 싸이더스 제작)을 둘러싼 잡음이 멈추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극장 개봉을 포기하면서 시작된 이번 '사냥의 시간' 사태가 오랫동안 기다린 관객의 기대를 또 한번 저버리게 만들었다. 법원의 상영금지 명령에 무기한 보류 상태에 접어든 '사냥의 시간'. 고통의 타임라인을 정리해봤다.
▶ 2월 22일, 코로나19 사태로 개봉 연기
'사냥의 시간'은 새로운 인생을 위해 위험한 작전을 계획한 네 친구와 이를 뒤쫓는 정체불명의 추격자, 이들의 숨막히는 사냥의 시간을 담아낸 추격 스릴러다. 2011년 개봉한 영화 '파수꾼'에서 10대 청춘들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본 섬세한 연출력으로 제32회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하며 '괴물 신예'로 등극한 윤성현 감독의 9년 만에 신작이자 이제훈, 박정민의 재회로 일찌감치 기대를 모은 작품이다. 여기에 충무로의 대세 배우로 손꼽히는 최우식, 안재홍, 박해수까지 가세해 올해 2월 기대작으로 관심을 받았다.
무엇보다 '사냥의 시간'은 지난 2월 열린 베를린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최초 베를리날레 스페셜 갈라 섹션에 초청돼 전 세계 최초 공개됐고 외신으로부터 '멈추지 않는 긴장의 연속'(Hollywood Reporter) '윤성현 감독만의 분위기를 살린 스릴러 영화'(Variety) '풍부한 상상력을 갖춘 훌륭한 스릴러'(Theupcoming) '인상적이고 흥미로운 스릴러'(Uncut movies) 등의 호평을 받으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베를린영화제 후광을 톡톡히 받은 '사냥의 시간'은 이 여운을 이어 베를린영화제가 끝난 2월 26일 곧바로 국내에 개봉할 계획이었지만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사태에 직면하면서 개봉을 나흘 앞둔 22일, 개봉 연기를 발표했다. '사냥의 시간' 측은 개봉 연기를 결정할 때까지만 해도 3월 중 코로나19 사태가 마무리 될 것으로 예상해 3월 개봉을 준비하기도 했지만 국내는 물론 전 세계로 더욱 악화된 코로나19 사태에 개봉일을 무기한 연기하게 됐다.
▶ 3월 23일, 극장 개봉 포기→넷플릭스 공개 선언
개봉을 연기하고 한 달이 지난 뒤에도 코로나19 사태는 계속 이어졌고 엎친데 덮친격 확진자들 중 일부가 극장 방문을 하면서 극장 기피 현상이 일어나 관객수도 급감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연일 최저 관객수를 기록하는 등 유례없는 혹한기를 맞게된 가운데 '사냥의 시간'을 투자·배급한 리틀빅픽처스는 회사의 존폐 위기까지 덮쳐 더는 개봉을 미룰 수 없었고 결국 한국 상업영화 최초 극장 개봉을 포기, OTT(Over-The-Top, 인터넷을 통하여 방송 프로그램, 영화 등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 플랫폼 개봉을 선택하게 됐다.
'사냥의 시간'은 개봉 연기를 발표한 뒤 한 달 만인 23일, 세계적인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인 넷플릭스를 통해 4월 10일 전 세계 190여개국에 동시 공개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리틀빅픽처는 "코로나19의 위험이 계속되고 세계적인 확산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이면서 더 많은 관객분들에게 안전하게 만날 수 있는 방식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결정했다"며 넷플릭스를 택한 이유를 밝혔다.
▶ 3월 23일, 리틀빅픽처스vs콘텐츠판다 이중계약 논란
극장 개봉이 아닌 넷플릭스를 통해 신작을 공개한 '사냥의 시간'은 한국 영화계 파격적인 도전으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사냥의 시간' 해외 배급 대행을 맡은 콘텐츠판다와 합의를 이루지 못해 잡음이 발생했다. 리틀빅픽처스가 '사냥의 시간'의 넷플릭스 행(行)을 발표한 뒤 곧바로 콘텐츠판다가 '이중 계약'이라며 '사냥의 시간' 해외 판권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나선 것. 콘텐츠판다는 리틀빅픽처스가 사전 논의 없이 넷플릭스와 이중계약을 진행했다며 반발했다.
콘텐츠판다는 "'사냥의 시간'는 현재까지 약 30여개국에 선판매 했고 추가로 70개국과 계약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리틀빅픽처스는 당사와 충분한 논의 없이 3월 초 구두 통보를 통해 넷플릭스 전체 판매를 위한 계약 해지를 요청해왔고 해외 세일즈 계약해지 의사를 전했다. 이미 해외 판매가 완료된 상황에서 일방적인 계약 해지는 있을 수 없다는 의사를 전했다. 하지만 '사냥의 시간'의 넷플릭스 공개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중계약 소식을 알렸다. 해외 영화사들로부터 기존에 체결한 계약을 번복할 의사가 없음을 직접 확인했음에도 넷플릭스와 계약을 강행했다는 걸 기사를 통해 확인했다. 리틀빅픽처스의 일방적인 행위로 인해 당사는 금전적 손해는 물론 그동안 해외 영화시장에서 쌓아올린 명성과 신뢰를 잃게될 위기에 처했다"며 호소했고 더불어 법적대응을 시사했다.
이에 리틀빅픽처스는 "이중계약은 전혀 터무니 없는 사실이다. 천재지변 등에 의한 사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계약서 조항에 따라 법률검토를 거쳐 적법하게 해지했다. 넷플릭스와 계약은 그 이후 체결됐다"며 "코로나19로 전 세계 극장이 문을 닫는 상황으로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리틀빅픽처스는 콘텐츠판다에 충분히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사냥의 시간' 판매 계약에 대한 손해를 보상하겠다는 내용의 이메일도 해외 판매사에 모두 직접 보냈다. 일부 해외수입사의 경우 다행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 모든 일 역시 넷플릭스와 계약 전에 진행됐다. 앞으로도 손해를 끼친 부분에 대해서는 양심적이고 합법적으로 당당하게 대응할 것이다"고 반박했다.
▶ 4월 8일, 법원 상영금지가처분신청 인용
'사냥의 시간'을 둘러싼 리틀빅픽처스와 콘텐츠판다의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았고 끝내 이 문제는 법정분쟁으로 이어졌다. 콘텐츠판다는 리틀빅픽처스의 이중계약에 대한 입장을 전한 이후 법원에 판매금지가처분 신청 소송을 걸었다. 하지만 소송을 건 시점은 리틀빅픽처스와 넷플릭스의 이미 계약이 끝난 상태로 법적 효력이 발생되지 않았고 이런 이유로 콘텐츠판다는 판매금지가처분 신청을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으로 취지를 변경해서 법원에 재소송을 걸었다. 동시에 리틀빅픽처스와 해외 단독 배급 계약에 대한 해지무효 소송 등의 안건을 추가했다.
콘텐츠판다는 국내 배급에 대한 권한이 아닌 해외 배급에 대한 상영금지가처분에 대한 권리를 계속해서 주장했고 '사냥의 시간'의 넷플릭스 공개에 있어서 국내가 아닌 해외 상영을 막겠다는 입장을 꾸준히 피력했다. 그리고 마침내 법원은 이런 콘텐츠판다의 입장을 받아들여 리틀빅픽처스의 상영금지가처분 법원 역시 이런 콘텐츠판다의 입장을 받아들여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법원은 본안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사냥의 시간'의 상영에 대해 국내를 제외한 전 세계에서 극장, OTT, 텔레비전(지상파, 케이블, 위성 방송 포함) 상영 및 판매는 물론 비디오·DVD 가공 및 판매, 배포를 비롯한 모든 방법의 해외 공개를 불허했다. 상영금지 당한 '사냥의 시간'은 오는 10일 오후 4시(한국시각) 국내를 포함한 전 세계 190여개국에 동시 공개가 불가능하게 됐다. 다만 콘텐츠판다는 해외 판권에 대한 권리만 있기 때문에 '사냥의 시간'의 넷플릭스 국내 공개는 예정대로 가능하다.
넷플릭스 공개 이틀을 앞두고 나온 법원의 판결에 리틀빅픽처스, 넷플릭스 모두 발등에 불이 떨어졌고 곧바로 리틀빅픽처스와 넷플릭스가 내부 회의에 돌입했다.
▶ 4월 9일, 넷플릭스 한국 포함 전세계 공개 보류
법원의 상영금지신청 인용 판결이 나온 이후 다음날인 9일 오전 넷플릭스는 법원의 판결을 존중해 내일(10일) 전 세계에 공개될 '사냥의 시간'을 보류하겠다고 선언해 또 한 번 영화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넷플릭스는 9일 오전 스포츠조선을 통해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판단을 존중해 오는 10일로 예정되어 있던 '사냥의 시간'의 콘텐츠 공개 및 관련 모든 행사를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을 포함, 전 세계에서 '사냥의 시간'을 기다려주신 시청자 여러분께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며, 추후 소식 전해드리겠다"고 밝혔다. 넷플릭스는 국내에서 선공개 후 해외 공개로 전화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과감히 전 세계 동시 보류를 결정, '사냥의 시간'이 원만하게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기다리겠다는 입장을 취한 것.
넷플릭스 관계자는 "'사냥의 시간'은 한국 영화 콘텐츠이지만 비단 국내 상영만을 목표로 계약한 것은 아니다. 전 세계 공개를 목표로 한 작품이라 과감히 전 세계 동시 보류를 결정하게 됐다. 넷플릭스에서는 이례적인 결정이다. 지금으로서 법원의 판결을 존중하는 게 가장 맞는 게 아닐까 싶다. 오는 10일 영화가 공개된 이후 당일 국내 GV, 해외 20여개국의 매체와 인터뷰, 주연 배우와 윤성현 감독의 SNS 라이브 등이 계획됐지만 모두 취소됐다. 또한 오는 13일부터 진행될 국내 인터뷰도 아쉽지만 취소됐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넷플릭스 역시 하루빨리 '사냥의 시간'이 전 세계 관객에게 보여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