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 용 기자] 기억에 남는 건 서울 삼성의 털모자뿐….
프로 스포츠에는 재미와 감동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스토리가 있어야 꾸준히 애정을 갖고 지켜보게 된다.
프로농구 신인 선수들의 첫 등용문, 신인드래프트는 어느 행사보다 다양한 스토리를 생산할 수 있다. 구단 관계자들, 팬들 모두 자신들의 팀에 어떤 새 식구가 합류하게 될 지 촉각을 곤두세운다. 다양한 환경에서 자라온 선수들이 각기 다른 사연을 갖고 자신의 농구 인생을 걸 새 팀을 만난다. 감격의 전체 1순위 지명자도 주목을 받지만, 마지막 지명 순서에 부름을 받고 막차로 프로 선수 자격을 얻은 선수들의 눈물도 가치가 있다.
하지만 23일 열린 2020년 신인드래프트는 아무런 재미도, 감동도 없었다. 지난해 드래프트를 다시 보는 듯, 똑같은 장면만 연출됐다. 이날 지명을 받은 24명 선수 중 단 한 명도 기억에 남을만한 소감을 밝히지 못했다. "뽑아주신 OOO 감독님과 구단 관계자분들께 감사하다"로 시작해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모교 감독과 코치들 그리고 동료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는 패턴이 반복됐다. 예년과 다른 건, 전체 1순위로 서울 삼성에 지명된 차민석(제물포고)이 뽑아준 이상민 감독에게 고맙다며 넙죽 인사를 하자, 나머지 선수들도 모두 똑같이 단상에서 인사를 한 것 뿐이었다.
감독들도 이 선수를 왜 지명했는지 설명해달라는 사회자의 말을 무시한 채 선수 이름을 호명하고 내려가기 바빴다.
드래프트를 지켜본 많은 팬들이 "보는 내내 지루했다"고 평가했다. 실제 관심을 끌만한 내용이 전혀 없었다. 가까운 미래에 스타로 인정받아야 할 선수들의 '어리바리'한 모습에 어떤 팬들이 매력을 느낄 수 있을까.
안그래도 프로농구는 대위기다. 날이 갈수록 인기가 떨어진다. 일부 마니아들을 위한 스포츠로 전락하고 있다. 여기에 신인 선수들의 경우에도, 해가 갈수록 실력이 떨어져 인지도가 부족하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자신을 알려야 하는 첫 공식 석상에서 당차게 자신을 알리는 선수는 없었다.
물론 선수들을 욕할 수 없다. 어린 선수들이 긴장되는 무대에서 떨려 제대로 말을 못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면 행사를 주최하는 KBL이 아이디어를 내야한다. KBL 관계자는 "선수들에게 재미있게 애기를 해달라고 주문을 하지만 쉽지가 않다"고 밝혔다. 너무 추상적으로 얘기를 하는 것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지도하거나 행사 구성을 아예 다르게 만들어보는 게 방법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사회자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형식적 인사는 지양하게 하고, 프로 선수가 된 소감과 포부를 끌어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전체 1순위가 유력했지만 2순위가 된 박지원(연세대)이 "나를 뽑지 않은 삼성을 후회하게 만들겠다" 이런 코멘트가 나온다면 지켜보는 재미가 훨씬 더해질 것이다. 예의 문제를 논할 수 있지만, 프로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코멘트다.
이번 드래프트 최고 히트 상품은 엉뚱한 곳에서 나왔다. 삼성이 지명 선수들에게 씌워준 털모자. 보통 구단 로고가 새겨진 캡모자를 씌워주는데, 이번 시즌부터 새 용품 스폰서를 만난 삼성이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 그 털모자마저 없었다면 정말 무미건조한 신인드래프트가 될 뻔 했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