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A.J. 프렐러 단장은 지난 7일(이하 한국시각) ESPN과의 인터뷰에서 "김하성은 일단 유격수, 2루수, 3루수로 모두 출전 시간을 가질 것"이라면서 "그렇지만 내야 어느 포지션이든 잘 맡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에게 투자한 건 팀에 활력을 불어넣은 선수라고 봤기 때문이다. 폭넓게 출전시간을 가질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김하성이 주전 약속을 받은 게 아니기 때문에 출전 시간은 그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에 대해 프렐러 단장이 구체적인 쓰임새를 설명한 것이다. 하지만 이를 해석하면 '플래툰' 또는 '백업' 이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의미가 된다. 4년 보장 2800만달러에 담긴 기대치 또한 최대 그 정도라고 봐야 한다.
김하성은 같은 날 화상 인터뷰에서 "파드리스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포지션은 2루"라고 했다. 자신의 주포지션인 유격수 또는 3루수로 뛰기 힘들다는 걸 본인도 잘 안다. 김하성이 3루수 또는 유격수로 기용되는 건 매우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지난해 내셔널리그 MVP 투표에서 나란히 3,4위에 오른 매니 마차도,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는 넘보기 힘든 주전들이다. 결국 김하성은 주전 2루수를 노려야 한다는 얘기다.
지난해 샌디에이고의 주전 2루수는 제이크 크로넨워스였다. 2015년 드래프트 7라운드에서 탬파베이 레이스의 지명을 받은 그는 2019년까지 5년간의 마이너리그를 거쳐 2019년 12월 샌디에이고로 옮긴 뒤 지난해 빅리그에 데뷔했다. 54경기에서 타율 2할8푼5리, 4홈런, 20타점, 26득점을 올리며 내셔널리그 신인왕 투표에서 2위를 차지했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크로넨워스 역시 유격수와 1,3루를 모두 볼 수 있는 전천후 내야수다. 1994년생으로 김하성보다 한 살이 많은 그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만큼 의욕과 투지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좌타자인 크로넨워스는 결정적으로 좌투수에 약하다. 지난해 우투수 상대로 타율 3할1푼6리를 친 반면, 좌투수에게는 2할1푼8리로 약했다. OPS도 우투수에 0.963, 좌투수에 0.550으로 큰 차이를 보였다. 상대가 오른손 선발일 때 크로넨워스, 왼손 선발일 때 김하성이 선발출전할 가능성이 높다. 전형적인 플래툰 방식이다. 다만 김하성은 KBO리그에서 통산 우투수, 좌투수 상대 타율이 각각 2할9푼3리, 2할9푼8리로 엇비슷했다.
KBO리그 출신 타자들의 메이저리그 도전사는 '플래툰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김현수다. 2016년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타율 3할2리를 쳤지만, 선발 출전은 좌익수로 나선 79경기가 전부다. 상대 선발이 왼손인 경기에는 어김없이 우타자 조이 리카드 또는 놀란 레이놀드가 좌익수로 기용됐다. 이듬해 김현수의 역할은 더 축소됐다. 볼티모어에서 56경기를 뛴 뒤 7월말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트레이드된 뒤에도 백업으로 40경기에 나서는데 그쳤다. 플래툰의 한계는 감각을 꾸준히 유지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김현수는 메이저리그 2년간 우투수 상대로 타율 2할8푼7리로 선전했지만, 좌투수 상대로는 6푼1리(33타수 2안타)로 고전했다.
강정호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입단 첫 시즌인 2015년 타율 2할8푼7리, 15홈런으로 인상적이었지만, 유격수와 3루수를 오갔고 후반기 막판에는 선발 출전 기회가 급격히 줄었다. 아예 3루수로 옮긴 2016년에는 103경기에 출전하는데 그쳤다. 강정호는 우타자임에도 좌투수에 약했다. 좌투수가 선발인 날에는 좌투수에 강한 데이빗 프리즈가 주로 선발 3루를 맡았다. 그나마 강정호는 활용가치가 높아 첫 두 시즌 동안 롱런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불미스러운 일이 잇달아 터지면서 메이저리그에서 사라지는 신세가 됐다.
이대호도 플래툰의 설움을 겪었다. 2016년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1년을 뛰는 동안 84경기에 출전했다. 선발 출전은 75번, 그 중 54경기가 좌완 선발이었다. 우완 선발일 때는 좌타자 애덤 린드가 선발 1루수로 나섰다. 시애틀과 1년 스플릿 계약을 했던 이대호는 결국 계약을 연장에 실패, 이듬해 KBO리그로 돌아왔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