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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러운 17세 반전승부사 '막내온탑' 신유빈의 시대[진심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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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보세요! 힘들 때마다 이 BTS(방탄소년단) 사진을 봤어요. 1등한 건 다 그 덕분이에요.(웃음) 오랜만에 경기를 뛰니까 진~짜 살아 있는 기분이에요."

이렇게 사랑스러운 승부사가 또 있을까. 삐끗하면 벼랑끝인 승부의 긴장감은 벌써 다 잊은 모양, 도쿄올림픽 대표 선발전 직후 만난 '막내 온탑' 신유빈(17·대한항공)이 조잘조잘 해맑은 소녀 모드로 변신했다. 탁구 백팩 속에 고이 간직해둔 BTS 사진을 살짝 꺼내보이더니 활짝 웃는다. 좀전까지 녹색 테이블 앞에서 쉴새없이 날아오르던 그 소녀가 맞나 싶다.

신유빈은 지난 4일 전북 무주국민체육센터에서 막을 내린 2020년 도쿄올림픽 대표 최종 선발전에서 여자부 6명의 선수 중 1-2차전 합산 1위로 올림픽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2004년생 신유빈은 지난해 3월 고등학교 진학 대신 대한항공 유니폼을 입었다. 가장 좋아하는 탁구에 올인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지난해 단 한번도 국내 경기가 열리지 못한 상황, 신유빈은 훈련에만 매진했다. 현정화, 유승민, 주세혁 등을 키워낸 백전노장 강문수 대한항공 감독이 지옥의 볼박스를 자청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 레전드 김경아, 당예서 대한항공 코치가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탁구신동의 재능에 비범한 노력이 더해진 결과는 눈부셨다. 시종일관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언니들을 압도했다. 최종선발 1차전 신유빈은 말 그대로 '닥공(닥치고 공격)'이었다. 매서운 포어드라이브로 열 살 이상 많은 언니들을 줄줄이 돌려세웠다. 이은혜, 양하은을 4대0으로 물리쳤고, 서효원, 최효주에게 4대1로 이겼다. 이시온에게 유일하게 2대4로 패하며 4승1패, 승자승에서 밀려 2위. 하지만 내용 면에선 밀리지 않았다.

최종선발 2차전, 신유빈은 더욱 이를 악물었다. 양하은에게 2세트를 먼저 내주고도 내리 4세트를 잡아냈고, 최효주에게 세트스코어 2-3으로 밀리다 내리 2세트를 따내며 4대3으로 이겨내는 뒷심을 보여줬다. 이시온과의 마지막 승부를 4대0으로 이겨내며 1위를 확정짓는 순간, 벤치의 '깎신' 김경아 코치가 신유빈을 끌어안으며 환호했다. 파죽지세, 5전승으로 1위에 올랐다. 김 코치는 "1위도 기뻤지만 이 어린 선수가 이 힘든 과정,이 힘든 중압감을 의연하게 이겨낸 모습이 너무나 기특하고 고맙다"며 감격을 전했다.

신유빈은 선발전 내내 떨지 않았다. "긴장감보다는 1년만에 경기를 해서 너무 좋았어요. 무주 가기 전에 꿈도 꿨어요. 심장이 두근거리고 너무너무 설레는 꿈. 살아 있음을 느꼈죠. 꿈에서도 탁구하길 너무 잘했다고 생각했어요"라며 활짝 웃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막히면 어떻게 풀어나갈지 잘 몰랐는데, 이번엔 경기하다 보면 뭔가 유리하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훈련을 많이 해서 자신감도 생긴 것같아요"

1m68의 키에 꾸준한 웨이트트레이닝으로 힘이 붙으면서 그녀의 포핸드 드라이브는 더 강하고 빨라졌다. 남자선수의 드라이브에 밀리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한방에 현장 탁구인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1차 선발전 땐 너무 자신감이 넘쳤어요. 시온언니와의 경기에서도 너무 공격적으로 덤비다 범실이 많았죠. 2차전에선 내려놓고 편하게 했죠. 어차피 내가 못하면 지는 거니까. '내꺼 해야 이긴다'는 말만 계속 되새겼어요."

신유빈은 "올림픽 티켓을 따게 돼서 제일 좋은 건 일본, 중국 선수들과 세계 무대에서 치열하게 붙을 수 있다는 것"이라며 눈을 빛냈다. 1988년 서울올림픽 홍차옥의 18세 최연소 기록을 넘어선 신유빈은 최고의 순간, 감사한 이들의 이름을 일일히 열거하며 꼭 써달라고 당부했다. "부모님과 가족들께 감사드려요. 늘 믿어주시고 제가 하고 싶은 탁구를 마음껏 하게 해주시거든요. 대한항공 팀 언니들, 강문수 감독님, 김경아 선생님, 당예서 선생님, 그리고 늘 도와주시는 스폰서들께도 정말 감사해요"라며 고개 숙였다. "무엇보다 저를 믿고 응원해주시는 팬들! 그분들께 꼭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라며 웃었다.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언니들을 모두 꺾고 선발전 1위에 올랐건만 스스로 평가한 자신의 점수는 "100점 만점에 60~70점"이다. "좀더 완벽하게 쳤어야 해요. 연습 때보다는 덜 나왔어요. 다음엔 더 잘해야 하고 더 정신 차려서 해야 돼요"라며 입술을 깨물었다. 신유빈이 아쉬워한 건 1위, 무패, 모두가 주목한 결과가 아니라 스스로만이 아는 과정이었다. "1차 땐 1패가 있었지만 사실 내용면은 더 좋았어요. 제가 하고 싶은 공격을 마음껏 했거든요. 근데 2차 때는 몸도 처지고 늦었어요. 몸을 좀더 빨리 움직였으면 미스 안할 것들이 있었는데…. 체력도 더 키워야 하고, 더 완벽해져야 해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진학 대신 실업행을 택한 결정, 그 후 1년이 지났다. 후회는 없을까. 1초만에 씩씩한 대답이 돌아왔다. "당연히 후회는 1도 없어요! 아침부터 일어나 마음껏 탁구 치고, 자기 전까지 계속 칠 수 있고… 좋아하는 탁구를 마음껏 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고 행복해요." 이제 열일곱 에이스에게 국내 무대는 좁다. 최종목표는 결국 "올림픽 메달!"이다. "많이 힘들었지만 이번 선발전을 통해 훈련양에 대한 믿음이 생겼어요. 올림픽을 준비하려면 훨씬 더 힘들어야겠죠?"라며 생긋 웃었다.

한편 올해 7월 도쿄올림픽에 나설 탁구 대표는 남녀 각 3명이다. 남녀 톱랭커인 장우진(세계랭킹 11위·미래에셋대우)과 전지희(세계랭킹 12위·포스코에너지)가 자동선발됐다. 최종선발 1-2차전을 거쳐 남자부 1위 '맏형' 이상수(삼성생명)와 여자부 1위 '막내' 신유빈이 도쿄행을 예약했다. 대한탁구협회 국가대표추천위원회가 선발전 결과 및 세계랭킹, 국제경쟁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남녀 각 1명씩을 추천, 경기력향상위원회 논의를 거쳐 올림픽대표가 최종 결정된다. 무주=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