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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톱이 아니라 원톱 이동준" 친절한 홍명보 감독의 '디테일' 전술교실[현장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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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보기엔 무뚝뚝할 것같지만 홍명보 울산 현대 감독은 보면 볼수록 친절한 사람이다.

A대표팀 감독, 대한축구협회 전무 시절 알고도 못할 말이 많았다. 울산 지휘봉을 잡은 후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경기 전후 울산 팬들과 취재진을 배려한 친절한 '전술 설명'이다. 왜 그 선수를 그 자리에 세웠는지, 왜 그 전술을 썼는지 경기 내내 궁금했던 점을 꼼꼼히, 소상히 알려준다. 울산 선수들도 "홍 감독님의 축구는 '디테일'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경기 소감을 말할 때도 잘했다, 아쉽다, 수고했다 식의 의례적 단답형에 그치지 않는다. 울산은 9일 K리그1 3라운드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홈경기에서 3대1로 승리하며 7년만의 개막 3연승을 달렸다. 홍 감독의 경기 소감은 이랬다.

"홈 경기 승리에 만족한다. 경기력과 준비한 것이 잘 나왔다. 세트피스 실점은 아쉽다. 2라운드까지 실점이 없었는데 세트피스에서 첫 실점을 했다. 포워드들이 부상으로 빠진 상황에서 이동준이 스트라이커 역할을 하면서 배후 침투하도록 했다. 윤빛가람 선수가 사이드로 나갔을 때 부분적인 움직임이 서로 잘 맞아떨어졌다. 우리 선수들에게 축하를 전한다."

이날 인천전을 앞두고 울산은 시즌 첫 위기를 맞았다. 최전방 공격수들의 줄부상이었다. 광주전에서 상대와 충돌한 힌터제어가 늑골 부상을 호소했고, 경기 하루 전날인 8일 김지현이 무릎 통증을 호소했다. 원톱 자원이 전무한 상황에서 이겨야 사는 홈경기를 치르게 됐고, 홍 감독의 선택은 '에너자이저 영건' 이동준이었다. "투톱은 많이 해봤지만 원톱은 처음"이라는 이동준이 인천전 펄펄 날았다. 최전방이지만 특유의 활동량으로 좌우, 앞뒤를 종횡무진 뒤흔드는 전천후 플레이에 '가짜 9번' '제로톱' 전술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전형적인 원톱이 아니라, 원톱인 듯 원톱 아닌 소위 '가짜 9번'의 활발한 움직임 속에 미드필더들의 유기적인 패스와 키핑, 공간 창출로 골을 만들어내는 전술로 받아들여졌다.

경기 후 기자회견, 스트라이커 부재 속에 '제로톱' 전술이 잘 맞아떨어진 것 아니냐는 질문에 홍 감독은 '제로톱'보다는 이동준의 장점을 살린 '원톱' 전술을 계획했음을 상세히 설명했다. "스트라이커들이 없는 상황에서 제로톱도 준비했지만 그보다는 이동준의 장점인 직선적인 플레이를 활용한 원톱 전술을 좀더 준비했다"는 것이다. "만약 제로톱을 준비했다면 윤빛가람이나 이동경이 페널티박스에서 좀더 키핑하는 플레이를 했겠지만 그보다 이동준을 원 스트라이커로 삼아 상대 수비 2명을 묶어주는 전략을 짰다"는 설명이다.

"이동준이 직선적으로 계속 배후에 침투하도록 했다. 부산서의 플레이도 지켜봤지만 스피드나 뒤로 돌아가는 움직임이 좋다. 상대가 부담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결국 이동준의 탁월한 스피드와 뒷공간 공략이라는 특장점을 최대한 살린, 홍명보식 '원톱' 전술은 효과를 제대로 봤다. 뒷공간을 치밀하게 노리는 원톱으로서의 임무는 물론 특유의 풍부한 활동량, 국대 동료 미드필더들과의 활발한 연계, 응용능력 덕분에 결과적으론 제로톱의 효과까지 누렸다고 볼 수 있다. 이동준은 상대 수비를 압도하는 스피드, 집요한 전방 압박으로 전반 13분 페널티킥을 유도해냈고, 1-1로 팽팽하던 후반 13분, 윤빛가람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밀어넣으며 결승골을 기록했으며, 후반 30분 김인성을 향한 눈부신 문전 컷백 어시스트까지 기록했다.

7년만의 개막 3연승만큼이나 결과를 빚어낸 전술과 과정을 설명하고 토론하는 홍 감독의 '디테일' 전술 교실은 신선하다. 이날 기자회견 후 현장에선 "이런 친절한 전술 설명은 정말 좋다"는 평가가 흘러나왔다. 울산=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