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최만식 기자] 중국 프로축구 청두 룽청의 서정원 감독(52)은 어찌 보면 '최초기록 제조기'다. 부임 첫 시즌(2021년), 갑급리그(2부) 청두를 창단(2014년) 후 처음으로 슈퍼리그에 올려놨다.
모기업 싱청그룹의 5개년 프로젝트를 조기 달성한 쾌거였다. 4년 전 싱청그룹이 청두를 인수할 때 매년 중국 리그 급수를 끌어올려 5년 뒤 슈퍼리그 진입 계획을 세웠는데 서 감독이 4년 만에 프로젝트를 완성해 버린 것.
그는 '최초의 이색 수상자'도 됐다. 싱청그룹이 매년 창립기념일(1월28일)을 맞아 시상하는 '최우수 임직원(상)'에 서 감독을 선정했다. 선수로 치면 '올해의 MVP'같은 상이다. 그룹 산하 스포츠단 감독이 이런 상을 받은 경우는 없었다.
서 감독의 최초 기록은 또 있다. 창단 후 처음으로 중국 A대표팀 선수를 배출했다. 서 감독이 2021년 집중적으로 키웠던 공격수 류러판(23)이다. 상하이 선화에서 임대 온 류러판은 서 감독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수비형 미드필더로 빛을 보지 못했다. 서 감독은 그를 투톱 자원으로 변신시켰고 지난해 13골이나 쏟아부은 골잡이로 만들었다. 국가대표의 꿈까지 이룬 류러판은 울면서 감사를 표했다고 한다.
서 감독이 울린 이는 류러판만 있던 게 아니었다. 갑급리그 4위를 한 것만으로도 스스로 '기적'이라 만족했던 선수들은 승강플레이오프까지 통과하자 서 감독을 향해 "이렇게 열심히, 진정성 있게 가르쳐 준 지도자는 처음"이라고 감사인사를 하며 울음바다를 연출했단다.
보름간의 '귀국 휴가'를 마친 서 감독은 10일 중국으로 출국해 2022시즌을 다시 준비한다. 출국에 앞서 스포츠조선과 만나 작별 겸 새출발을 신고했다. 서 감독은 지난 1년을 돌아보며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코로나19로 인해 귀국하지 못한 것도 그렇고…, 힘든 순간들이 참 많았다"고 했다.
중국에서, 축구를 대하는 문화가 다른 선수들과 부대껴가며 단기간에 성과를 낸다는 게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었을 터. 서 감독은 프로의식이 부족했던 선수들을 뜯어고치기 위해 '수도자'의 심정을 선택했다. "그래도 사람인데 변할 때까지 설득하고, 진정으로 다가가면 변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또 참았다. 그랬더니 기적처럼 선수들과 통했다."
서 감독은 "후배 코치들도 너무 힘들다고 하길래 '우리가 괜히 선생님이란 소리를 듣겠나. 선수가 미안해 할 정도로 안아주자'는 조언을 수없이 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1년여 전 청두행을 선택했을 때 항상 공부하는 마음으로 나를 테스트 해보자는 결심을 했기에 후회는 없다고 했다. 사실, 지난달 12일 승강PO가 끝났을 때도 중국 슈퍼리그와 일본 J리그로부터 '러브콜'이 있었다. 하지만 청두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돈의 유혹'의 뿌리친 것 역시 후회하지 않는다고.
서 감독이 부임 1년 만에 청두의 매력에 빠진 것은 또다른 '첫 기록'때문이다. 수십년 만에 처음으로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축구를 하게 됐다는 것. 서 감독이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소리를 들어본 것은 20여년 전, 현역 국가대표·해외파 전성기였을 때다. 당시 워낙 잘하는 선수였으니 감독이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아도 제 할일을 하던 때였다.
그 때 이후 청두에 와서 잊었던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싱청그룹 회장과 구단주가 회의 때마다 구단 수뇌부에 "서 감독이 해달라는 대로 다 해드려라"는 얘기를 한다고. 서 감독은 "이렇게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일해 본 것은 지도자 되고나서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런 청두를 위해 서 감독은 뭔가 보답하는 새시즌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슈퍼리그 잔류는 기본. 상위권을 노리는 팀으로 만들겠다"는 서 감독은 "중국 축구에 업적을 남긴 선배 감독들을 계승해 '좋은 한국 감독'으로 내 이름이 기억되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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