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윤여정이 윤여정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특유의 너스레와 뼈 있는 농담, 그리고 청각장애인 후보를 배려한 수어 시상부터 난민 캠페인을 지지하는 파란 리본의 드레스코드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품격이 넘치는 역대 최고의 시상이었다.
윤여정은 28일(한국시각) 오전 8시 50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 시상자로 무대에 올랐다. 앞서 윤여정은 미국의 독립영화 '미나리'(정이삭 감독)를 통해 한국 배우 최초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을 수상했고 이밖에 영국 아카데미(BAFTA), 미국 배우 조합상(SAG), 미국 독립영화상 등 전 세계 유력 영화제에서 모두 합쳐 42관왕을 달성하며 한국 배우의 위상을 높였다.
지난해 여우조연상 수상자 자격으로 올해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시상을 맡은 윤여정. 등장부터 뜨거운 관심과 환대, 지지를 받았다.
일단 레드카펫부터 특별했다. 윤여정은 애플 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수휴 각본, 코고나다·저스틴 전 연출) LA 월드프리미어를 위해 2주 전 출국, 아이돌급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중. '파친코' 월드프리미어를 끝낸 뒤 나영석 PD의 새 예능 '뜻밖의 여정' 촬영을 절친한 후배 이서진과 함께 시작, 올해는 '미나리' 팀이 아닌 이서진의 에스코드를 받으며 아카데미 레드카펫에 등장했다. 명품 브랜드 샤넬의 골드 버튼 장식이 포인트가 된 블랙 롱드레스를 입은 윤여정은 단아하고 고풍스러운 매력으로 할리우드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았다. 특히 왼쪽 어깨에 유엔난민기구(UNHCR)에서 전개하는 캠페인 '#WithRefugees'(난민과 함께) 파란색 리본을 달고 등장해 의미를 더했다.
2부 오프닝 첫 시상 주자로 나선 윤여정은 이번엔 전매특허 촌철살인 입담으로 할리우드 스타들을 사로잡았다. 수줍은 미소와 함께 단상에 선 윤여정은 "난 할리우드 사람은 아닌데 다시 할리우드에 오게 돼 기쁘다"고 인사를 건넸다.
지난해 윤여정은 수상 소감에서 "그동안 해외에서는 내 이름을 다르게 불렀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여영' '야정' '윤정' 등의 발음으로 불렀는데 사실 '여정'이다. 하지만 오늘 다 용서하겠다"고 재치있는 소감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올해 시상에서는 '역지사지'의 마음을 고백해 할리우드 스타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그는 "우리 어머니가 '뿌린 대로 거둔다'고 말했는데 엄마 말을 잘들었어야 했다. 지난해 내 이름 발음 잘안되는 것에 대해 말했는데 죄송하다. 올해 후보들 이름을 보니 이름 발음이 쉽지가 않다. 미리 발음 실수에 대해 사과 말씀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날 남우조연상 후보로는 '벨파스트'의 키어런 하인즈, '코다'의 트로이 코처, '리카르도 가족으로 산다는 것'의 JK 시몬스, '파워 오브 도그'의 제시 플레먼스, 코디 스밋-맥피가 이름을 올렸고 경합 끝에 청각장애인 배우이자 감독인 트로이 코처가 수상자로 호명됐다.
윤여정은 수상자를 확인한 후 "'미나리'는 아닙니다. '코다'의 트로이 코처"라며 말했고 동시에 '코다'의 트로이 코처를 수어로 전했다. 트로이 코처는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두번째 청각장애인이다. 윤여정은 올해 시상을 준비하면서 후보에 오른 배우들의 작품을 감상, 청각장애인 배우의 소식에 미리 짤막한 수어를 준비한 것. 여기에 실제로 트로이 코처가 수상하자 그가 수상 소감을 수어로 전달할 수 있도록 트로피를 대신 받아주는 배려까지 겸비, 다시 한번 윤여정의 센스가 빛을 발하는 순간을 만들었다. 시상 이후 진행된 포토콜 행사에서도 트로이 코처와 함께 다정한 포즈와 수어 제스처 등으로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윤여정의 소속사 후크엔터테인먼트 측 관계자는 이날 본지에 "현재 윤여정은 '파친코' 행사를 끝낸 뒤 귀국하지 않고 미국내 에이전시 팀과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윤여정이 미리 수어를 준비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마 그의 성격상 즉흥적인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윤여정은 현지에서 '뜻밖의 여정'을 이서진과 함께 촬영하고 있고 이후에도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 뒤 천천히 귀국할 계획이다"고 설명했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