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와! 첼시 지소연이다!"
지난 28일 K리그1 수원FC-울산 현대전을 앞둔 수원종합운동장, 300여 명의 홈 팬들이 지소연 사인회에 몰려들었다. 첼시위민에서 눈부신 8년반 여정을 마무리하고 수원FC 위민에 입단한 지소연과 팬들의 첫 만남. "우와! 첼시!" "'찐' 레전드!" 감탄사를 연발하던 꼬마 팬들은 사인을 받아들고 깡총깡총 뛰어오르며 기쁨을 표했다. 양팀 선수 입장 후 지소연은 수원FC, 울산 선수들과 주먹 악수를 나눴다. 런던서 함께 했던 '울산 캡틴' 이청용은 반갑게 눈인사를 전했고, '여자축구의 빅팬' 홍명보 울산 감독과 김도균 수원FC 감독은 꽃다발로 입단을 축하했다. '지소연 후배' 동산고 여자축구부 선수들은 까치발을 든 채 자랑스러운 선배의 시축을 직관했다. 성대한 '웰컴 파티' 후 지소연이 말했다. "K리거들과 감독님, 선후배들의 이런 환대라니… 상상도 못했어요. 너무 감사합니다. 수원FC에 오길 잘했어요."
남녀축구가 아름답게 어우러진 수원의 그라운드에서 잉글랜드도, K리거도 인정하는 '월드클래스' 지소연과 '키워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귀국 후 그녀가 다짐했던 '선한 영향력'을 비롯한 모든 키워드에 200% 유쾌하고 진솔한 대답이 돌아왔다.
▶선한 영향력
세계 여자축구 시장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우리도 변화가 필요하다. 특히 WK리그 '월, 목요일 오후 6시' 경기시간만큼은 더 많은 팬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꼭 개선이 됐으면 좋겠다. 여자축구 A매치, 해외파 비즈니스석 등도 처음엔 힘들었지만 지금은 자연스러워졌다. '선한 영향력'이란 여자축구 발전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소통하고, 더 많이 나누겠다는 뜻이다. 후배들도, 팬들도 행복한, 더 좋은 축구 환경을 만드는 데 힘이 되고 싶다.
▶수원FC 위민
수원FC 위민은 내 선택이었다. 남녀 팀이 통합돼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시절 여자축구를 아껴주셨던 김호곤 단장님도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오늘같은 입단식, 사인회도 수원FC였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일단은 WK리그 적응이 중요하다. '신인의 마인드'로 패기 있게 해보겠다. 7월 4일 경주한수원 원정이 데뷔전이 될 것같다. 문미라, 전은하 등 공격수와는 합이 잘 맞는다. 미라는 축구 센스, 드리블이 좋고, 경기 흐름도 잘 읽는다. 은하도 연령별 대표팀서 함께했다. 첼시에서 그랬듯 팀과 함께 성장하고 싶다. 팀에 위닝멘탈리티를 불어넣어, 우승하는 팀을 만들고 싶다.
▶손흥민
(손)흥민 선수와 동시대에 영국서 함께 뛴다는 건 정말 자랑스러웠다. 엠마 헤이즈 첼시위민 감독님도 토트넘 팬이셨다. 동료들도 다들 '쏘니'에 대해 궁금해 했다. "원래 저렇게 밝은 성격이냐" "한국 선수들끼리 친하냐" 등 질문도 많이 받았다. "잘 모른다"고 했지만 같은 한국선수라는 게 자랑스러웠다. 첼시 동료들과 "'잉글랜드 프로축구협회(PFA) 올해의 선수상'에 '골든부트(득점왕)' 수상자인 쏘니가 후보에도 안오른 건 정말 말도 안된다"는 이야기도 나눴다. 우승 타이틀을 고려했겠지만 후보에도 안 오른 건 저평가됐다고 생각한다. (지소연은 첼시 2년차였던 2015년 PFA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다.) 언제든 상 받을 자격이 충분한 선수이고, 매년 골을 엄청 많이 넣고 있고 득점왕도 했으니 분명 기회가 올 것이다. 영국에서의 8년 반, (박)지성오빠, 흥민이는 물론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 오빠, (윤)석영이, (황)희찬이 등 한국선수들을 통해 힘을 얻었다. 첼시에 간 지 얼마 안돼 스탬포드브리지 터널에서 (기)성용오빠가 걸어나올 때 눈물 날 뻔한 기억도 난다. 영국 땅에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당당히 맞서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버틸 힘을 얻었다.
▶박지성
런던에서 밥 몇번 먹었다고 친한 오빠라고 생각했는데 소위 '티켓 사건' 이후 마음이 멀어졌다. '딴 세상 사람'이더라.(웃음) 올 시즌 맨유와의 최종전을 앞두고 구단에 티켓 20장을 빼놨는데 이후 지성오빠가 오겠다고 하셨다. 표가 매진된 상황, 팀 매니저에게 4장을 더 요청했는데 절대 안된다고 하더라. 망설이다 "지성팍 이즈 커밍(Ji-sung Park is coming, 박지성이 옵니다)"이라고 했더니 태세 전환, VIP석은 물론 주차권까지 챙겨주더라. 감독님과 선수들도 '지성팍이 진짜 오냐'고 난리가 났다. 경기 후 선수들이 사인을 받겠다고 지성오빠를 잡아달라고 했고 오빠가 기다려주셨다. '지성팍'은 스타들의 스타다. 자랑스러웠다.
▶이금민
영국에서 잘 적응하고 있는 후배. 브라이턴에서 잘 적응했고, 영국에서 떠날 때 무등도 태워주고 친구처럼 지냈다. 금민이는 걱정 없다. 혼자서도 틀림없이 잘할 것이다. (조)소현언니, 금민이 등 동료들의 영국 진출을 보면서 잘 버텼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처음 영국에 와서 누군가가 와주기를 늘 기다렸고, 내가 못하면 한국선수는 쳐다도 안볼 것같단 생각에 매경기 이를 악물었었다. 영국서 일본선수들끼리 뛰는 걸 보며 부러웠는데 우리도 '코리안더비'를 하게 됐다. 최근에도 브라이턴, 토트넘 같은 팀들이 한국선수들을 많이 보는 걸로 알고 있다. 뿌듯하다. 후배들이 용기 있게 도전하길 바란다.
▶주목할 후배
추효주, 강채림, 손화연 등도 좋고 보은 상무 이정민도 눈여겨보고 있다. 내년 월드컵에서 후배들이 맹활약해주길 바란다. 여자축구대표팀의 중심이 돼야 할 선수들이다.
▶첼시
언제든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고향같은 곳이다. "한번 블루는 영원한 블루." 8년반 동안 수많은 선택의 순간이 있었지만 '원클럽 우먼'을 택했다. 후회도 미련도 없다. 13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고, 영원한 첼시 선수로 남았다.
▶아쉬움
8년 반동안 할 수 있는 걸 다했고, 이루고 싶은 걸 다 이뤘다. 유일한 아쉬움은 유럽챔피언스리그 우승이다. 지난 시즌 결승 진출까진 했는데 빅이어를 못든 것이 아쉽다. 귀국 전 여자 유럽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초대를 받았는데 일부러 가지 않았다. 그 경기를 보면 첼시에서 다시 우승에 도전하고 싶은, 미련이 생길 것같았다.
▶월드컵
2019년 프랑스월드컵은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다. 너무 슬펐다. 화도 나지 않았다. 세계적 수준과 차이가 너무 컸다. 4년간 그 차이를 줄이려 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차이가 더 났다. 프랑스와의 개막전 땐 경기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난생 처음 한 것같다. 볼도 못잡은 채 12㎞ 이상을 뛰었더라. 이제 호주-뉴질랜드 월드컵이 1년 남았다. 우리 후배들도 많이 성장했다. (강)채림이, (추)효주 등 후배들이 A매치를 통해 더 성장하고, 월드컵 때 신구조화를 잘 이뤄서 일단 1승 후 16강 이상의 성적을 거둘 수 있었으면 한다.
▶목표
동료에게 인정받는 선수. 운동선수에겐 그게 최고의 찬사다.
▶꿈
A매치 137경기(64골)를 뛰었으니 150경기는 달성할 수 있을 것같은데…. 모르겠다. 이제 개인적인 꿈은 없다. 내년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고, 선후배들과 함께 아시안게임(3연속 동메달), 동아시안컵 등 아시아 대회에서 꼭 한번 정상에 서보고 싶다. 수원=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