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 용 기자] 정찬헌이 보여준 진짜 프로의 모습.
키움 히어로즈는 '어린이날 매치'에서 SSG 랜더스에 1대3으로 패했다. 나머지 4개 구장 경기가 비로 취소돼 모든 팬들의 관심이 쏠린 경기. 고척돔 개장 후 첫 어린이날 매진 기록을 세우는 등 키움 입장에서 승리가 간절했겠지만 홈 어린이팬들에 선물을 주지 못했다.
그래도 위안거리가 있었다. 새로운 5선발로 첫 선발 등판을 한 '베테랑' 정찬헌이 최고의 피칭을 해줬기 때문이다. 정찬헌은 이날 6이닝 2안타 무4사구 3삼진 1실점을 기록했다. 스프링캠프를 다녀오지 못한 선수, 개막 엔트리에도 포함이 안됐고 예정됐던 등판이 연기됐던 선수가 맞느냐고 할 만큼 안정적이고 인상적인 투구를 해줬다. 옥에 티라면 4회 2사 후 허용한 통한의 연속 안타에 의한 유일한 실점, 그리고 열악했던 타선 지원 뿐이었다. 이날은 패전투수가 됐지만, 마땅한 5선발 자원이 없는 키움의 팀 상황을 생각하면 앞으로를 기대케 하는 활약이었음이 분명했다.
쉽지 않은 야구 인생을 살고 있다.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2018년 LG 트윈스에 입단할 때만 해도 '전국구 유망주'였다. 150km가 넘는 강속구를 뿌리는 정통 파워피처였다. 하지만 터질 듯 터질 듯, 터지지 않았다. 2017년 27세이브를 기록하며 마무리로 자리잡는 듯 했지만, 허리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속구를 잃었다. 2021 시즌을 앞두고는 키움 히어로즈로 트레이드 됐다. 하지만 키움은 기회의 땅이었다. 이적 첫 해 선발로 전향해 9승 투수가 됐다. 빠른 공 대신 다양한 변화구로 승부하는 '기교파'로 변신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프로 투수들의 구속에 대한 욕심과 집착은 대단하다. 하지만 정찬헌은 현실을 빠르게 인정했다. 그게 살 길이라는 걸 알아서다. 야구에 대한 뛰어난 감각도 큰 도움이 됐다. 단 시간 내에 스타일을 바꾸고, 다양한 변화구를 연마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키움에서 2시즌을 보냈고, 생애 첫 FA 자격까지 얻었다. 소위 말하는 '대박'은 아니어도, 어느정도 기대를 했을 터.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키움 뿐 아니라 어느 팀도 정찬헌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부상 이력이 있는 30대 중반의 제구 피처에게 큰 돈을 쓸 구단은 없었다.
그렇게 'FA 미아'가 됐다. 보통 선수들은 이런 경우 낙심하고, 포기한다. 하지만 정찬헌은 달랐다. 포기하지 않고 혼자 몸을 만들었고,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는 기회에 대비해 독립구단에 찾아가 실전 투구까지 했다. 5선발 자리가 불안했던 키움이 다시 정찬헌을 찾았고, 정찬헌은 그저 다시 공을 던질 준비만 했다. 그리고 첫 등판에서 키움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제대로 증명했다.
LG 시절 젊었던 정찬헌은 한 마디로 하면 '철부지'과였다. 밝고 통통 튀었지만, 진중한 느낌이 부족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내적 성장을 거듭했다. 키움에서는 야구에 대한 진지한 마인드를 보여주고, 후배들을 챙기는 모습이 180도 달라져 있었다. 인터뷰 자세, 내용도 훌륭했다. 늦게나마 '진짜' 프로 선수가 됐다는 느낌을 줬었다. 그러니 키움도 구속, 성적을 떠나 정찬헌에게 다시 기회를 줬다. 'FA 미아' 치고 후한 대우. 2년 총액 8억6000만원. 행동으로 보여주는 리더 역할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정찬헌이 키움의 믿음에 제대로 보답했다. '진짜' 프로의 모습으로 말이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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