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빛나는 역투로 만든 첫승, 그저 꿈에 불과했던 걸까.
롯데 자이언츠 외국인 투수 댄 스트레일리가 또 무너졌다. 20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SSG 랜더스전에서 5이닝 6안타 2볼넷(2사구) 3탈삼진 5실점(4자책점)으로 패전 투수가 됐다. 시즌 4패(1승). 동백빛으로 불게 물든 사직구장에서 2만여 함성을 등에 업고 연승과 선두 질주를 꿈꿨던 롯데는 SSG에 0대5로 완패하며 고개를 숙였다.
결과도 결과지만 내용도 좋지 않았다. 0-1로 뒤지던 4회말 사구 2개로 만루 위기를 자초하면서 실점했다. 5회 1사 1, 2루에서도 볼넷으로 만루 위기에 빠진 뒤 2타점 적시타를 맞았다.
2020년 롯데 유니폼을 입은 스트레일리는 그해 탈삼진 205개를 뽑아내면서 부문 1위에 올랐다. 직구 최고 구속은 140㎞ 중후반에 그쳤으나 정교한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으로 스트라이크존 구석구석을 공략하며 15승(4패)을 따냈다. 2021시즌에도 10승(12패)을 따내면서 롯데의 에이스 역할을 했다. 지난해 롯데가 글렌 스파크맨의 대체자로 스트레일리에 다시 손을 내밀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추억이 기반이 됐다. 롯데는 스트레일리와 2022시즌 총액 40만달러에 계약하면서 2023년 총액 100만달러도 포함시키는 다년계약을 했다.
올 시즌 8경기를 치른 스트레일리의 모습은 롯데 1기 시절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2020~2021시즌엔 초반에 고전하더라도 서서히 안정감을 찾아가면서 이닝을 먹는 모습이 두드러졌다. 하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강점인 제구가 무뎌지면서 볼넷 비중이 증가했고, 구위로도 상대 타자 방망이를 이겨내지 못하는 모습이다.
최근 스트레일리는 경기가 생각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에선 예민한 모습을 곧잘 드러내기도 했다. 1기 시절 사비를 털어 응원도구를 마련하고 직접 티셔츠까지 제작하며 동료 선수를 응원했던 모습과는 딴판. 결과로 이야기하는 프로의 세계에서 부진하면 예민해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여유마저 사라진다면 반등은 더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롯데는 시즌 초반 에이스 노릇을 했던 나균안이 최근 조금식 균열이 생기고 있으나, '안경에이스' 박세웅과 반즈, 한현희가 이닝을 늘려가기 시작하며 선발진이 안정감을 찾아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타선의 짜임새와 시너지가 나기 시작하며 5월에도 선두권 경쟁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선발진에 붙은 물음표가 떨어지지 않는 가운데, 그나마 믿을 만한 카드로 여겼던 스트레일리가 반등 조짐은 차치하고 오히려 퇴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올 시즌 롯데는 예년과 확연히 다른 페이스를 보여주고 있다. 뛰어난 투-타 응집력을 바탕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우며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 강팀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2017시즌 이후 6년 만에 가을야구행 최적기를 넘어 31년 만의 대권 도전이란 비원도 풀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도 조금씩 피어오르고 있다. 스트레일리가 하루 빨리 계산이 서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롯데에겐 최상의 시나리오다.
부산=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