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제 프로 인생요? 아쉽고 미련 가득한 7년이었네요."
부산 야구팬들에겐 너무 컸던 3글자 '강민호'. 결국 그 존재감을 벗어나지 못했다.
나원탁(29)은 30일 은퇴를 발표했다. 2017년 신인 드래프트 2차 2라운드(전체 19순위)로 삼성 라이온즈에 지명, 프로에 첫 발을 들인 이래 7년만에 야구에 작별을 고했다.
지난 23일 퓨처스(2군) 상무전 1이닝 무실점이 선수 생활 마지막 등판이었다. 나원탁은 경기 후 구단 측에 은퇴 의사를 전했고, 이날 최종적으로 임의해지 처리됐다.
올해 1월 새신랑이 된 그다. 현실은 한층 더 차갑게 느껴졌을 수 있다. 연락이 닿은 나원탁의 목소리엔 홀가분함이나 시원함보다 짙은 아쉬움으로 가득했다. 그는 "계속 포지션이 바뀌다보니 마음고생이 많았죠"라는 속내를 털어놨다. 끝까지 자신을 기다려준 팬들에게도 감사를 전했다.
U-23(23세 이하) 국가대표팀에 뽑힐만큼 촉망받는 포수였다. 데뷔 시즌을 마친 겨울, 강민호(삼성 라이온즈)의 FA 이적 당시 보상선수로 지목돼 롯데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강민호는 이대호와 더불어 롯데를 대표하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젊은 포수' 나원탁을 향한 기대감도 뜨거웠다. 롯데 구단은 드래프트 동기인 나균안(2차 1라운드, 전체 3순위)과 나원탁의 경쟁을 통해 미래 안방을 맡기고자 했다.
강민호는 2006년 최기문의 부상 공백을 메우며 일약 주전 포수 자리를 꿰찼다. 또한번의 기적을 원했던 롯데팬들의 지나친 기대감은 큰 실망으로 변했다. 나균안과 나원탁 모두 주전 포수로 자리잡지 못했다.
나원탁은 2018년 퓨처스에서 타율 3할4푼4리 14홈런 44타점, OPS(출루율+장타율) 1.059의 맹타를 휘둘렀지만, 아쉬웠던 수비는 그가 1군 마스크를 쓸 기회조차 박탈했다. 이해 1군 출전은 20경기 24타석에 불과했다.
시즌을 마친 뒤 입대했고, 2020년 9월 팀에 복귀했다. 이후 구단 측의 제안에 따라 1루수와 외야수를 거쳐 2021년 여름부터는 투수를 겸하기 시작했다. 대타 겸 불펜 투수로서 1군 출전 빈도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2020년 투수로 전향한 나균안은 에이스로 거듭났다. 반면 나원탁은 150㎞에 달하는 직구와 독특한 테이크백의 강점을 지녔지만, 좀처럼 투수에 적응하지 못했다. 투수 전향 후 1군 경험은 단 10경기, 8⅔이닝 평균자책점 12.46에 불과하다. 올해는 단 1경기, ⅔이닝의 기회만 주어졌다.
롯데는 지시완 안중열 정보근 등이 번갈아 마스크를 썼지만, 팀 전력은 계속 흔들거렸다. 결국 안방이 확실하게 안정된 건 올해 '80억 포수' 유강남을 FA 영입한 였다. 나원탁은 꾸준히 포수에 미련을 가졌지만, 돌아갈 순 없었다. 그는 "U-23 대표팀 때가 전성기였네요"라며 씁쓸해했다.
"포수는 야수들을 지휘하는 사령관이면서도, 투수들과 호흡을 맞추는 역할이잖아요. 그 매력이 아쉬움으로 남았다고 할까…아마 (나)균안이도 그렇게 잘하고 있어도 (포수에)미련이 있을 걸요? 공을 받는 것 자체도 재미있고, 어린 투수들이 '덕분에 잘 던졌어요' 하면 얼마나 기분좋은지 몰라요."
동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나원탁은 "'올해까지만 해보지 그랬냐'는 사람도 있고, '일주일 쉬고 돌아와'하고 웃어주는 형도 있었다. '용기 있는 선택 했다. 존중한다'며 격려해주는 사람도 있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아내가 '고생 많았어' 하고 응원해줬어요. 당분간 함께 시간을 보내며 아마야구 지도자를 준비할 생각입니다. 훗날 지도자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