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중국)=스포츠조선 김가을 기자]대한민국 수영의 날이다. '만리장성' 중국의 견고함에 균열을 냈다. 그것도 수천 '짜요부대'가 뜬 중국의 홈에서 제대로 매운맛을 선보였다.
25일 중국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 수영장에서 항저우아시안게임 경영 둘째날 레이스가 벌어졌다. '홈팀' 중국은 첫날 레이스에서 금메달 7개를 모두 쓸어담는 저력을 발휘했다. 둘째날도 일방적 응원 속 금메달 수집에 나섰다.
한국이 중국의 독주를 가로막았다. '황금세대'가 압도적인 실력으로 중국의 코를 납작하게 눌렀다. 기대를 모았던 남자 계영 800m는 아시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황선우 양재훈 김우민(이상 강원도청) 이호준(대구광역시청)으로 꾸려진 한국 남자 계영 800m 대표팀은 결선에서 7분01초73으로 터치패드를 찍었다. 일본이 가지고 있던 종전 아시아 기록(7분02초26)을 깨트리며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이 됐다. 또 한국 수영 사상 첫 아시안게임 단체전 첫 금메달을 따냈다. 한국 남자 계영은 앞선 아시안게임에서 은 1개, 동 5개를 기록했다. 5년 전 자카르타 대회에선 4위로 메달을 놓쳤다.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한국은 예선에서도 1위를 기록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결선에선 '깜짝 오더'를 선보였고 그게 적중했다. 조별리그를 전체 1위로 통과한 한국은 4번 레인에서 경기를 치렀다. 첫 번째 영자로 양재훈이 나섰다.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그동안 1번 주자는 줄곧 황선우가 맡았다. 하지만 이번엔 양재훈이 먼저 나섰다. 초반 양재훈이 다소 밀리더라도 뒤에 나오는 영자들이 충분히 역전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었다.
카드는 적중했다. 양재훈은 초반 200m를 2위로 통과했다. 양재훈이 기대 이상의 좋은 레이스를 펼쳤다. 뒤이어 나선 이호준이 반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300m 구간을 돌며 1위 자리를 찾았다. 세 번째 주자 김우민과 마지막 영자 황선우는 훌륭한 실력으로 상대의 기를 꺾었다. 2위 중국(7분03초40)을 2초 가까이 따돌리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짜요'를 외치던 중국이 침묵하는 순간이었다.
남자계영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한국 수영의 오랜 꿈이자 지상과제였다. 4명의 선수 중 황선우 김우민 이호준 등 3명이 '44~45초대' 기록을 보유한 상황. 선수들의 출전 순서를 고민했다. 계영에선 통상 기록이 제일 빠른 에이스를 첫번째 영자나 마지막 영자로 쓴다. 기선을 제압하거나, 뒷심으로 추격하기 위한 목적이다. 금메달이 지상과제인 아시안게임에서 황선우를 1번 영자로 쓰고, 이호준을 마지막 영자(앵커)로 쓰던 기존의 전략을 완전히 바꿨다. '48초대' 양재훈의 부담감을 걸어주되 4명 선수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묘책에 대한 고민이었다. 2022년 부다페스트, 2023년 후쿠오카, 두 번의 세계선수권에서 결선행, 최종 6위 쾌거를 이뤘던 탓에 일본, 중국 등 경쟁국에게 작전, 순서가 모두 노출됐다.
결전의 날을 위해 코칭스태프는 진천선수촌에서부터 반전 오더를 준비했다. 이정훈 감독은 출국 전 "깜짝 놀랄 오더다. 경기 당일 보시면 알게 될 것"이라고 했었다. 감독의 전언대로 대반전이었다. 양재훈을 1번 영자로 내세웠다. 이호준-김우민을 2-3번 영자로 내세웠고 '200m 절대 에이스' 황선우에게 마지막 영자의 미션을 맡겼다. 기록순으로 1~4번 영자를 내세운 것. 초반 양재훈이 다소 밀리더라도 에이스들이 합심하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라이벌들의 허를 찌르는 한편, 오히려 순위가 밀린 상황에서 상대를 추격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내는 상황이 첫 금메달에 절대 유리할 것이라는 믿음이 통했다.
경기 뒤 황선우는 "동료들과 좋은 합을 맞춰 엄청난 기록과 아시아 신기록까지 깨게 돼 대한민국 수영팀이 기세를 탄 것 같다. 만족하는 결과다. 우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 나갈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박태환 SBS해설위원은 "정말 대단한 기록이다. 모든 선수들이 다 잘했지만 특히 양재훈 선수가 너무 잘해줬다. 통상 3번 영자로 나와 48초대를 기록했던 선수가 첫 번째 영자로 나와 1분46초83을 끊어줘서 이렇게 좋은 기록으로 사상 첫 금메달이 가능했다"며 반전 작전 성공에 찬사를 보냈다.
한편, 2002년생 영건 지유찬(대구광역시청)은 남자 자유형 50m 결선에서 21초72를 기록,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본인이 작성했던 아시안게임 기록을 다시 한 번 깼다. 한국 수영의 경사다. 한국 수영 역사상 아시안게임 남자 자유형 50m에서 우승한 건 2002년 부산 대회 김민석(공동 1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경기 뒤 지유찬은 "홈 경기도 아니고 중국에서 금메달을 따서 뜻깊은 것 같다. 어제 경기도 다 봤는데 내심 내가 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기분 좋았다"며 웃었다.
한편, 이날 여자 개인혼영 200m에선 김서영(경북도청)이 2분10초36을 기록하며 동메달을 획득했다.
항저우(중국)=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