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세미프로리그인 5부리그 소속팀을 만나 주전급을 내고도 90분 동안 골문을 열지 못했다. 연장전에 간 것만으로도 굴욕적인 결과. 우승권과 멀어진 토트넘 홋스퍼의 현실이었다.
12일(한국시각) 영국 탬워스의 더 램 그라운드에서 펼쳐진 토트넘-탬워스 간의 2024~2024 FA컵 3라운드(64강전). 엔제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이날 5부 중위권인 탬워스를 상대로 힘을 뺄 것이란 예상과 달리 티모 베르너, 제이슨 메디슨, 라두 드라구신 등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용해온 주전급 다수를 내보냈다. 빡빡한 리그 일정이지만 확실하게 90분 내에 승리를 챙기겠다는 의지. 데뷔전이 점쳐졌던 양민혁은 이날 출전 명단에 들지 못했고, 손흥민은 벤치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경기가 미묘하게 흘러갔다.
토트넘은 80대20의 압도적인 점유율을 갖고도 탬워스 골문을 열지 못했다. 전반 유효슈팅은 단 1개. 철저하게 역습으로 나선 탬워스의 전략, 생소한 인조잔디 그라운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눈치였다. 잃을 게 없는 탬워스의 역습이 오히려 토트넘 골문을 위협했다. 측량사를 겸업 중인 탬워스 골키퍼 자스 싱의 신들린 선방까지 겹치면서 토트넘은 전후반 동안 득점에 실패, 결국 연장전에 접어들었다.
결국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인내심도 한계에 도달했다. 연장전반 시작과 동시에 손흥민을 투입했다. 연장전에 간 것만으로도 납득하기 힘든 상황. 승패 외나무다리인 승부차기까지 가는 상황은 막아야 했다.
손흥민의 발끝에서 승부가 갈렸다.
손흥민은 연장전반 9분 탬워스 진영에서 끊어낸 볼을 잡은 뒤 상대 진영으로 직접 몰고 갔다. 전매특허인 폭풍 드리블. 탬워스 진영 아크 부근에서 프리킥을 얻어냈다. 이 프리킥이 문전 오른쪽에 있던 브레넌 존슨에게 패스로 연결됐고, 존슨의 슈팅이 상대 선수에 맞고 굴절되는 자책골이 되면서 토트넘이 힘겹게 리드를 잡았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연장후반 2분 손흥민의 도움으로 추가골이 나왔다. 왼쪽 측면으로 넘어온 패스를 침착하게 트래핑, 아크 왼쪽에서 문전으로 파고들던 클루??스키에게 지체 없이 연결했다. 이 패스를 클루??스키가 왼발슛으로 마무리하면서 토트넘은 격차를 벌렸고, 손흥민은 시즌 7호 도움을 기록했다. 토트넘은 연장후반 12분 존슨의 쐐기골까지 보태면서 3대0 승리로 FA컵 4라운드(32강전) 진출에 성공했다. 답답했던 흐름을 한 번에 바꾼, 에이스 다운 활약을 펼친 손흥민이다.
최근까지 손흥민 주변엔 먹구름이 가득했다.
지지부진하던 재계약 흐름은 올 초 토트넘이 1년 계약 연장 옵션을 발동하면서 일단락 됐다. 그러나 영국 현지에선 옵션 발동의 배경은 결국 이적료가 발생하지 않는 보스만룰로 손흥민을 내주지 않겠다는 토트넘의 의지가 작용한 것이라는 관측이 주를 이뤘다. 지난 10년 간 팀을 위해 헌신하며 '레전드급 활약'을 펼쳐온 손흥민에겐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시선.
토트넘 소식을 전하는 스퍼스웹은 '토트넘은 선수 측과 회담 없이 계약 연장 옵션을 발동했다. 손흥민의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다'며 '손흥민은 토트넘에 환상적으로 헌신했고, 충성했다. 다만 올 시즌 활약은 모든 면에서 형편없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손흥민이 3년 계약을 원한다면 남은 시즌 꾸준히 기여할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고 냉정한 시선을 보냈다. 크리스탈팰리스 전 단장인 사이먼 조던도 최근 한 매체를 통해 "손흥민의 건강이 궁금하다. 여러 소식통을 통해 작년에 그가 수술을 받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결국 토트넘이 내년 계약 종료 이전까지 손흥민의 이적을 추진할 것이란 예상이 우세한 상황.
다니엘 레비 토트넘 회장은 탬워스전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후반 추가시간까지 골이 터지지 않는 답답한 흐름 속에 잔뜩 굳은 얼굴로 그라운드를 바라보는 모습이 현지 TV중계를 통해 포착됐다. 이런 가운데 연장전에 투입된 손흥민이 경기 흐름을 바꾸면서 완승을 이끌었다. 과연 레비 회장은 손흥민의 활약상을 지켜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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