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현대건설 상대로 한 세트도 못 땄었는데…"
시즌 전부터 객관적 전력 면에서 꼴찌가 예상됐고, 전반기까진 그 예상대로 진행됐다. 하지만 후반기 들어 말 그대로 '태풍의 눈'이자 고춧가루 그 자체다.
여자배구 GS칼텍스 이야기다. GS칼텍스는 18일 도드람 V리그 5라운드 현대건설전에서 풀세트 혈투 끝에 세트스코어 3대2로 승리, 갈길 바쁜 현대건설의 발목을 잡아챘다.
올시즌 들어 단 한번도 이기지 못했던 현대건설이다. 아니, 단 한세트도 따내지 못했다. 1~4라운드 모두 0대3 셧아웃이었다. 실바가 아무리 용을 써도, 현대건설 특유의 그물망 수비조직력에 다른 선수들이 꽁꽁 묶인 결과였다.
이날은 달랐다. 경기 후 만난 이영택 감독은 "한 세트도 못땄던 현대건설을 어떻게든 이겨서 기분좋다. 우리 선수들 다 열심히 해줬고, 준비했던 플레이가 잘됐다"고 자축했다.
2~3세트 흐름이 넘어가자 빠르게 주력 선수들을 쉬게 해준 선택이 좋았다. 기어코 파이널까지 끌고 가자 체력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이영택 감독은 "잘 안될 때는 밖에서 좀 쉬면서 보고 들어가는 것도 괜찮다"며 미소지었다.
양팀 공히 주포인 모마와 실바를 잘 봉쇄한 경기였다. 4세트까지 두 선수 모두 공격 성공률이 40%를 밑돌았다. 모마는 5세트에 더 지친 기색을 드러내며 23득점(성공률 33.9%)에 그친 반면, 실바는 한층 더 힘을 내며 35득점(41.3%)을 기록한 차이는 있었다.
이영택 감독은 이날 공격 성공률이 30.8%에 불과했던 권민지를 줄곧 중용했다. 노린 바가 있었다.
"권민지가 블로킹 능력이 있다. 모마 앞에 권민지를 의도적으로 계속 세웠다. 3세트까지 내준 뒤 서브를 범실 위험이 있더라도 길게 짧게 변화를 주면서 공략한 게 주효했다. 선수들을 믿은 결과가 좋았다."
비시즌 FA 4명이 한꺼번에 이탈했다. 시즌전 이미 꼴찌가 예정됐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절망적인 전력이었다. 전반기엔 14연패의 늪에 빠지는 등 예상대로 진행되는 듯 했다. 하지만 후반기 들어 반전을 이뤄내며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이날 승리로 5라운드 성적은 3승2패가 됐다.
이영택 감독은 "전반기엔 부상자가 너무 많아 매경기 짜맞춰 내보내는 것도 힘들었다. 이제 베스트 멤버가 돌아가니까 콤비네이션이 잘 맞는다"고 돌아봤다. 이어 "누누이 얘기하지만 결국 실바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4라운드 때 실바가 3경기 151득점을 올리는 등 폭발적인 기세를 뽐내고도 팀 성적 부진으로 라운드 MVP를 받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을 드러낸 바 있다. 당시 이영택 감독은 "맨날 지니까 실바한테 MVP 한번 주세요 라는 말도 못하겠다. 5라운드 때는 좀더 성적을 끌어올려서 실바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아쉬움을 곱씹었다.
이젠 달라졌다. 본격적인 지원사격에 나섰다.
"본인이 경기력이나 (득점 1위)타이틀에 대한 욕심이 있는 선수다. 코치진 뿐 아니라 젊은 선수들도 실바에게 기대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고, 해내야한다는 마음가짐이 강한 선수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5라운드 1경기 남았는데, 실바가 라운드 MVP를 받을 자격 있다고 생각한다. 시즌 내내 고생하는데 한번 힘을 낼 계기가 됐으면 한다."
이영택 감독은 올시즌 선수들의 발전에 대해 "한수진이 가장 큰 우려를 받았는데, 주전 리베로 첫 시즌 잘해주고 있다. 오세연도 꾸준히 성장해왔지만, 붙박이 주전으로 뛰면서 많이 성장했다. 안혜진도 정말 오랫동안 재활을 거쳐서 경기 감각 면에서 힘들었을 텐데, 정말 잘해주고 있다"며 뜨겁게 칭찬했다.
장충=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