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um App

Experience a richer experience on our mobile app!

'경질 아냐' 이승엽 감독, 왜 '곽빈 복귀 전 날' 극약처방 → 두산 위한 최후의 한 수였다

by

[스포츠조선 한동훈 기자] 이승엽 감독이 두산 베어스 지휘봉을 스스로 내려놓았다. 항간에서 추측하는 '자진사퇴 형식을 빌린 경질'은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에이스 곽빈과 필승조 홍건희 복귀를 앞두고 이승엽 감독은 놀라운 결단을 내렸다.

두산은 2일 오후 5시가 넘어 '이승엽 감독이 자진 사퇴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승엽 감독은 이날 구단 사무실에 '예정되지 않은 방문'을 자청했다. 사장 단장 면담 끝에 구단은 이승엽 감독의 의사를 존중하기로 했다.

시점만 놓고 보면 의외다. 당장 3일 잠실 KIA전에 '토종 1선발' 곽빈이 돌아온다. 불펜에 큰 힘을 줄 홍건희도 실전 점검 마지막 단계다. 굵직한 전력들이 속속 컴백하는 와중에 이승엽 감독이 물러났다. 오매불망 기다렸던 지원군이 드디어 도착하기 직전, 수장이 떠난 것이다.

이승엽 감독이 두산을 위한 마지막 한 수로 '극약처방'을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가장 큰 전력 플러스가 될 때 선수단이 정신적으로도 똘똘 뭉칠 수 있도록 자신이 희생했다.

두산은 올 시즌 시작부터 꼬였다. 개막 1주차에 핵심투수 3인방이 이탈했다. 곽빈 홍건희와 좌완 필승조 이병헌까지 쓰러졌다. 외국인투수 콜어빈과 잭로그는 시범경기에서 보여준 것과 달리 시즌 초반 활약이 실망스러웠다. 믿었던 마무리 김택연이 무려 3경기에서 결정적인 동점 2점 홈런을 맞았다.

하지만 이승엽 감독은 이를 방패막이로 삼지 않았다. 그는 늘 "하늘이 시련을 주신다. 그래도 프로는 부상이 핑계가 될 수 없다"며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는 태도를 유지했다. 또한 두산에서 감독 3년차였으며 한국시리즈 진출을 목표로 내걸었다. 스프링캠프에는 구단주까지 찾아와 "4등 5등하려고 야구하는 것 아니다"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팀 상황을 핑계삼아 갑자기 '리빌딩을 하겠다'느니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전폭적으로 주겠다'느니 노선을 변경할 상황이 아니었다. 이승엽 감독은 주어진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며 팀 전력이 정상화 될 때까지 버텨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실제로 전력누수가 심했던 투수진은 어느정도 수습이 됐다. 선발진에서는 곽빈이 빠졌어도 최승용 최원준이 자기 몫을 잘해주며 중심을 잡았다. 신인 홍민규 최민석이 기회를 살려 눈도장을 찍었다. 불펜 또한 최지강이 살아나고 이영하가 버티면서 박치국 박신지 박정수 등이 필승조 급으로 성장했다.

정작 문제는 타선이었다. 두산은 오명진 임종성 김준상 등 신인 내야수들을 발굴해냈다. 그러나 내야 핵심인 박준영 이유찬이 부상으로 또 빠졌다. 고액 FA인 김재환 양석환이 해결사 역할을 해주지 못했다. 키움과의 주말 3연전에서 20이닝 연속 무득점에 그치며 2경기 연속 0대1로 패한 것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대로라면 곽빈이 와도 반등이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곽빈 복귀'는 올해 두산이 치고 올라갈 사실상 마지막 찬스다. 여기에서도 반격에 실패하면 7월 8월 이후에는 새로운 동력이 딱히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승엽 감독은 이 시점에서 두산에 가장 강력한 동기부여를 주기 위해 사퇴 카드를 꺼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당분간 조성환 퀄리티컨트롤 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는다. 두산은 추후 회의를 통해 신임 감독 선임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한동훈 기자 dh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