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암=스포츠조선 김성원 기자]손흥민의 토트넘 시계가 '10년'에서 마침내 멈췄다.
손흥민은 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뉴캐슬 유나티이드와 '2025 쿠팡플레이 시리즈' 2경기에서 고별전을 치렀다. 토마스 프랭크 토트넘 감독은 "오늘이 손흥민의 마지막 경기"라고 확인했다. 손흥민은 4일 영국으로 돌아간 토트넘 선수단과 동행하지 않았다.
손흥민은 2일 토트넘과 결별을 선언했다. 파날레 무대, 시작부터 감동이 몰아쳤다. 손흥민의 절친인 배우 박서준이 시축에 나섰다. 그는 "손흥민의 긴 토트넘 여정에 밤잠을 많이 설치고, 감사하고, 즐거웠고, 행복했다"고 했다. 그의 시축은 손흥민에게 향했고, 볼을 잡은 손흥민은 박서준과 포옹하며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또 한 명의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국가대표 후배인 이강인(파리생제르맹)이 손흥민의 토트넘 마지막 경기를 직관했다.
6만4773명이 운집한 상암벌은 단 한 인물을 위한 거대한 극장이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가 인정한 토트넘 레전드 손흥민의 '라스트댄스'가 그라운드를 수놓았다.
손흥민은 '함성'을 몰고 다녔다. 전반 3분 토트넘의 선제골이 일찌감치 터졌다. 케빈 단소가 압박으로 따낸 볼이 브레넌 존슨의 발끝에 걸렸다. 그의 오른발 슈팅은 뉴캐슬 수비수 댄 번 맞고 굴절되면 그대로 골망에 꽂혔다.
존슨은 손흥민을 위한 헌정 세리머니를 펼쳤다. 트레이드 마크인 '찰칵 세리머니'로 손흥민을 미소짓게 했다.
전반 7분과 77분(후반 32분), 그리고 80분(후반 35분)에는 손흥민의 응원가 '나이스원 소니'가 트럼펫 선율에 맞춰 그라운드에 울려퍼졌다. 손흥민의 배번인 7번을 추억하기 위한 '쇼'였다.
손흥민은 전반 37분에는 페드로 포로의 환상적인 패스를 받아 처음이자 마지막 슈팅으로 연결했다. 그러나 그의 발을 떠난 볼은 상대 수비에 걸렸다. 뉴캐슬의 동점골은 전반 37분 터졌다. 앤서니 고든의 패스를 받은 하비 반스가 페드로 포로를 앞에 두고 오른발로 골네트를 갈랐다.
손흥민의 토트넘 시계는 63분에서 멈췄다. 손흥민 교체 사인이 떨어졌다. 손흥민은 토트넘 동료는 물론 뉴캐슬 선수들과도 포옹했다. 이들은 두 줄로 도열, '인간 터널'을 만들었다. 신고식이 아닌 '인디안밥 고별식'으로 손흥민의 미래를 응원했다.
참고 참았던 손흥민의 눈물샘도 터졌다. 그는 벤치의 프랭크 감독을 비롯해 코칭스태프, 선수들과 일일이 포옹하며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양민혁과도 '석별의 정'을 나눴다. 토트넘에서의 시간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토트넘은 뉴캐슬과 1대1로 비겼다. 손흥민은 토트넘의 전설로 역사에 남았다. 그는 2015년 8월 토트넘에 둥지를 틀었다. 10년 동행이 막을 내렸다. 손흥민은 EPL의 아시아 축구 역사를 새롭게 섰다. 2019년 유럽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정상 등극에 실패했지만 2020년에는 번리전 72m 원더골로 국제축구연맹(FIFA) 푸스카스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2021~2022시즌에는 EPL 골든부트(득점왕·23골)를 거머쥐었다. EPL 득점왕과 푸스카스상 모두 아시아 선수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대기록이다. 그리고 2024~2025시즌 토트넘 흑역사를 갈아치웠다. 손흥민은 주장으로 유로파리그(UEL)에서 우승컵을 선물했다. 2007~2008시즌 리그컵 정상 이후 17년 만의 환희였다. 유럽대항전은 1983~1984시즌 이후 41년 만의 우승이었다.
손흥민은 토트넘에서 통산 454경기에 출전해 173골 101도움을 기록했다. EPL에선 127골 71도움을 올렸다. 127골은 EPL 역대 16위, 71도움은 17위에 위치했다. 198개의 공격포인트는 13위다. 통산 골과 어시스트 부문 상위 20위 안에 든 선수는 손흥민을 포함해 웨인 루니, 티에리 앙리, 프랭크 램파드, 앤드류 콜, 테디 셰링엄, 모하메드 살라 등 7명에 불과하다.
손흥민이 2015~2016시즌 EPL 데뷔 이후로 좁히면 더 대단한다. 손흥민보다 더 많은 골과 도움을 기록한 선수는 살라(270개)와 해리 케인(231개) 뿐이다. 손흥민은 바이에른 뮌헨으로 떠난 케인과도 치명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둘은 47골을 합작했다. EPL 역대 공격조합 부분에서 1위에 올라 있다.
손흥민은 경기 후 상암벌을 돌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토트넘 선수들은 헹가래로 '캡틴'의 마지막 길에 화답했다. 손흥민은 오열하며 이별을 아쉬워했다.
그는 경기 후 "여러가지 감정이 북받쳤는데 처음에는 정말 안 울줄 알았다. 생각보다 오랜시간 동안 있었던 팀을 떠나 보내려하다보니 쉽지 않았다. 선수들의 한마디, 한마디 듣다보니 감정적으로 북받쳐서 눈물이 많이 났다"며 "너무나도 행복한 경기를 했다. 팬, 동료, 상대 선수들 덕분에 잊지 못할 하루를 보냈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잠을 못 잘 것 같다"고 비로소 웃었다.
대한민국 팬들은 영원한 손흥민의 지지자다. 어떤 선택이든 응원하겠다고 한다. 손흥민은 "감사하다. 도대체 어떤 복을 받아서 이런 선수로 성장했고, 많은 사랑을 받는 선수로 자리매김 했는지 모르겠지만 팬분들 덕분에 이 자리에 있다. 많은 분들이 고생했다는 말을 해주는 것에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가득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아직 축구인생이 끝난 게 아니다. 더 즐거움을 드리려고 할 거다. 축구 선수로 해야할 일이 남아 있다. 더 즐거운 모습, 더 좋은 모습, 더 행복한 모습으로 팬들을 찾아뵐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손흥민은 "선수들이 너무 좋은 얘기를 많이 해줬다. 내 입으로 이야기하기가 창피할 정도다. 그런 얘기를 듣다보니 토트넘에서 10년 동안 있으면서 선수들에게 조금은 영감이 됐구나, 도움이 된 선수였구나 조금은 느낄 수 있어서 더 행복했다"고 미소지었다.
한국 축구의 미래인 양민혁(토트넘)과 박승수(뉴캐슬)가 이날 막판 그라운드를 밟았다. 손흥민은 "특별한 말은 안했지만, 많은 축구 팬들이 보고 있는만큼 나보다 더 잘하는 선수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양민혁은 많이 친해졌다. 나한테는 농담도 한다. 14세 차이가 나는 친구가 농담을 하니 적응이 안되더라"며 웃은 후 "그래도 너무나 보기 좋고, 오늘도 들어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 친구도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나도 새로운 환경 속에서 열심히 해야겠구나라는 점을 또 배워서 좋았다. 누누이 어린 선수들을 보면 얘기하지만 우리가 어린 선수들을 지켜줘야 한다. 너무 섣불리 좋아하지도 말고, 다치게도 안해주셨으면 좋겠다. 선수들은 옆에서 많이 도와줄 거다"라고 설명했다.
손흥민의 절친인 벤 데이비스는 "손흥민은 비록 우리 팀은 떠나지만, 내 인생에서는 더 오래 함께할 소중한 친구이자 가족이다. 새로운 여정에서 많은 걸 이루길 바란다"면서 "10년 간 클럽이 참 많이 변했는데 손흥민이 참 많은 영향을 줬다. 손흥민이 떠난다는 건 클럽엔 아주 슬픈 일"이라고 아쉬워했다.
손흥민은 "속은 어떤지 모르지만 다 겉으로는 슬퍼하더라"며 너스레를 떤 후 "내가 우는 모습을 진짜 못 본 선수가 제일 친한 친구인 데이비스다. 자꾸 내 옆으로 오지마라고 하더라. 이 친구의 눈을 보면 빨개져 있고, 눈물이 글썽글썽 하는 것을 보면서 한편으로 미안하고, 고맙기도 하다. 난 그 친구 아들의 대부니까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자랑스러운 대부가 돼야 한다. 축구 선수로서, 사람으로 멋있는 모습 보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미소지었다.
손흥민은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 LA FC 이적이 임박했다. 미국행도 이미 암시했다. 그는 새 팀 선택의 기준을 묻는 질문에 "월드컵이 가장 중요하다. 나의 마지막 월드컵이 될 수도 있다.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행복하게 추구할 수 있는 곳이 내가 앞으로 선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다. 그 마음을 정리하고 있다"고 했다. 2026년 북중미월드컵은 미국, 캐나다, 멕시코가 공동 개최한다. 이 가운데 메인은 미국이다.
손흥민은 차기 행선지에 대해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 여기서 말씀드리는 것보다 조금 기다려달라. 어제 좋은 정보 드렸으니까"라며 "오늘은 한 발 양보해주면 감사하겠다"고 웃었다.
'좋은 정보'는 미국행을 의미한 것으로 해석된다. "축구를 하면서 가장 어려운 결정 중 하나였다. 축구를 하면서 한 팀에 10년 있었던 것은 내게도 자랑스러운 일이다. 10년 전에 처음 왔을 땐 영어도 잘 못하던 소년이었다. 지금은 남자가 돼 떠나게 됐다. 작별에도 좋은 시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렵지만 좋은 시기에 떠나게 됐다. 모두가 이를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손흥민의 진심이다.
프랭크 감독은 손흥민의 교체 순간 "너무 아름다웠다. 경기장에 있던 선수들, 뉴캐슬에게도 감사하다. 손흥민이 교체돼 나왔을때 선수들을 안아주면서 감정적으로 올라온 것 같다. 축구의 아름다움과 존경심이 생긴 순간이었다"고 했다.
에디 하우 뉴캐슬 감독은 "손흥민은 EPL에서 뛴 선수 중 가장 위대한 선수였다. 경기장 뿐만 아니라 밖에서 보여준 태도 역시 귀감을 준 선수였다. 한 팀에서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같은 팀에서 생활을 했어도, 그런 모습을 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가장 위대한 선수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손흥민의 또 다른 미래가 시작됐다.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