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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 반전' 설종진 감독대행, 박찬호 뛰어넘는 야구 천재였다는데...왼손 유격수 실화? 직접 물어봤더니 [광주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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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스포츠조선 김용 기자] 얼마나 야구를 잘 했으면, 좌완 내야수로 출전시켰을까.

키움 히어로즈 설종진 감독대행은 야구팬들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프로에서 네 시즌을 뛰는데, 소화한 경기수는 단 14경기. 입단팀 현대 유니콘스와 히어로즈를 거쳐 프런트, 코치직을 두루 경험했고 2019년부터는 2군 감독으로만 일을 했으니 다른 스타 출신 지도자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코치로라도 1군에 등록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 키움이 전반기 종료 후 홍원기 감독을 경질하고, 설 2군 감독을 '깜짝' 감독대행으로 선임하자 여기저기서 '설종진이라는 인물은 도대체 누구인가'라는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설 감독대행 선임 소식 후, 같은 시대 야구를 했던 지도자들이 "설 감독대행이 어릴 적 야구를 정말 잘했다"고 입을 모았다. 한 코치는 "야구 천재였다. 좌투좌타인데 유격수를 했다"는 말도 안되는 증언까지 해줬다. 1루수를 제외한 내야수들은 99.9% 오른손 잡이다. 왼손 잡이 선수들이 뛰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찰나의 시간을 다투는 야구에서 왼손 잡이는 공을 잡고 몸 전체 방향을 틀어 공을 던져야 하기에 시간적 손해가 막심하다.

아무리 옛날 야구고, 아마추어 무대라고 하지만 좌완 내야수가 말이나 될까. 설 감독대행에게 직접 물어봤다. "야구 천재이셨다면서요."

설 감독대행은 "아니다"고 말하며 쑥스럽게 웃었다. "정말 유격수를 본 게 맞느냐"고 묻자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청룡기 준결승에서 3루를 보던 선배가 다쳤다. 그 자리에 투입됐다. 결승까지 3루에서 뛰었다"고 말했다. 이어 "두 경기에서 3개 정도의 타구가 왔던 걸로 기억한다. 다 아웃 처리 했다. 타구가 그렇게 어렵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했다.

청룡기는 예나 지금이나 고교 최고 대회다. 그 대회 준결승, 결승에서 그것도 갓 입학한 1학년 왼손 잡이 선수에게 3루를 맡겼다는 자체가 얼마나 대단한 야구 센스를 갖추고 있었는지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

설 감독대행은 신일중, 신일고를 졸업했다. 설 감독대행의 어린 시절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양승호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 양 전 감독도 신일중, 신일고 출신으로 설 감독대행이 선수일 때 중3부터 고3까지 4년을 지도했다고.

양 전 감독은 설종진 감독대행 이름을 얘기하자마자 "야구 천재"라고 말하며 웃었다. 양 전 감독은 "3루수 뿐 아니라 유격수, 투수, 4번타자 다 시켰다. 그만큼 야구를 잘했다. 공-수-주가 다 되는 친구였다"며 "그 때 동갑 친구들이 박찬호, 고 조성민, 임선동이었다. 이 선수들과 청소년 대표에 뽑혔는데 그 때 설 감독대행이 주장이었다. 리더십도 있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야구인들은 이들을 '황금 92세대'라고 칭하는데, 거기에 설 감독대행이 중심이었다는 것.

양 전 감독은 "친구들이 다 투수라 야수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고3 때 상이란 상은 다 휩쓸었다. 졸업을 앞두고 프로팀들이 돈 다발을 싸들고 찾아왔다. 당시로 정말 큰 돈이었다. 하지만 중앙대로 갔다. 그 당시에는 스카우트 하고 싶은 선수를 데려갈 때, 실력이 부족한 동기들을 같이 받아주는 관행이 있었다. 그 약속을 어길 수 없어 중앙대로 갔다"고 회상했다. 박찬호는 한양대, 고 조성민은 고려대, 임선동은 연세대 이렇게 각 학교가 스타 선수들을 한 명씩 영입할 수 있었다.

대학 시절 불운한 화재 사고로 큰 부상을 입어 야구를 접을 뻔 했지만, 죽지 않은 야구 센스로 결국 1996년 2차 2라운드 상위 지명을 받고 현대에 입단했다고. 야수로 입단했지만 부상 때문에 투수로 전향한 자체가 다방면으로 재능이 있었음을 입증한 사례다.

광주=김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