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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심장 닥공→단식 첫4강'신유빈"월클?한번으로 안되죠,이제 시작!"[진심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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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월드클래스요? 한번으론 안되죠. 이제 시작이에요."

7일 아시아탁구선수권 출국을 앞두고 만난 신유빈(21·대한항공·세계 13위)이 '월드클래스' 질문에 씩씩하게 답했다. 세계 7~8위를 찍는 대한민국 톱랭커지만 스스로 "중국, 일본 에이스를 이겨야 월드클래스"라고 했었다. 신유빈은 한가위 연휴 진행된 월드테이블테니스(WTT) 중국 스매시에서 만리장성을 뛰어넘더니, 한국 여자선수 최초로 단식 4강에 올랐다. 16강서 중국 에이스, '세계 4위' 콰이만을 3대2로 돌려세웠고, 8강서 '한솥밥 에이스' 주천희(삼성생명)에게 4대2 역전승하며 4강에 올랐다. 4강서 '세계 2위'이자 이번 대회 우승자 왕만유(중국)와 듀스 접전 끝에 1대4로 패했지만 왕만유가 경기 후 '신유빈의 속도'에 적응하는 어려움을 말했을 만큼 위협적인 경기력을 선보였다. '안방' 중국선수 16명이 대거 출전한 별들의 전쟁에서 당당히 단식 4강에 올랐다. 한국 여자선수 최초일 뿐 아니라, 전지희와 함께한 여자복식, 임종훈과 함께한 혼합복식에서 올림픽, 세계선수권 메달을 모두 따낸 신유빈의 개인 커리어에도 '단식 4강'은 오르지 못한 산이자, 간절한 꿈이었다. 지난해 싱가포르 스매시, 올해 US 스매시 모두 8강에서 막혔다. 신유빈은 "계속 8강에서 떨어지다보니 딱 한번만이라도 올라가고 싶었다. 4강이 간절했다. 간절한 목표를 이뤄서 정말 행복했다"며 웃었다. 만리장성을 넘은 첫 단식 4강, 그녀는 "이제 시작"이라고 했다. "한번으론 안된다. 계속 4강권에 들고, 계속 중국 에이스를 이겨야 그때 월드클래스가 되지 않을까" 반문했다.

▶지더라도 공격하는 '강심장' 탁구

첫 단식 4강만큼 '신유빈 탁구'의 내용적 변화가 의미심장하다. 1년 전 파리올림픽 때와 비교해 확연히 달라졌다. 더 빠르고 더 강해졌다. 콰이만, 왕만유 등 세계 최고의 톱랭커를 상대로 백사이드에서 과감하게 돌아서 포어드라이브를 꽂아내리는 장면은 짜릿하다. 지키고 이기려는 탁구가 아니라 실수하고 지더라도 공격하는 '강심장' '닥공' 탁구로 진화했다.

하루아침에 뚝딱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신유빈은 "1년 전부터 탁구의 변화를 준비했다. 스타일을 바꾸기 위해 계속 시도하고 노력했다"고 했다. 지난 6월 도하세계선수권, '세계 1위' 쑨잉샤와의 8강전에서 듀스 접전 끝에 게임스코어 2대4로 패했던 경기도, 돌이켜보면 사건의 전조였다. 신유빈은 "대표팀의 석은미 감독님, 최현진 코치님, 주세혁 감독님, 함소리 코치님 모두 훈련 때나 경기 때 과감하게 공격하라고 하신다. 중요한 순간엔 결국 공격해야 이길 수 있다"고 했다. 1년의 남모를 분투가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피나는 훈련의 성과가 몸에서 절로 나오기 시작했다.

▶신유빈-주천희, 두 에이스의 동반 성장

이번 대회 또 하나의 수확은 신유빈, 주천희, 대한민국 여자탁구의 현재이자 미래인 두 에이스의 동반 성장이다. 중국 탁구의 중심, 베이징에서 뜨거운 불꽃 랠리를 펼친 신유빈-주천희의 8강전에 대해 '한국선수들 같지 않고 중국선수들 같았다'는 평가에 신유빈은 "최고의 칭찬"이라며 미소 지었다. 그랜드 스매시 대회에서 한국 선수간 8강전 역시 최초였다. 신유빈이 소피아 폴카노바(오스트리아), 콰이만(중국)을 넘었고, 주천희가 '세계 8위' 이토 미마, '세계 12위' 스쉰야오를 넘었다. 만리장성을 넘어 만난 두 한국 에이스, K-탁구가 4강행을 놓고 보기 드문 명승부를 펼쳤다. 신유빈은 "나도 8강에서 꼭 (주)천희 언니와 하고 싶었다. 그런 큰 무대, 단식 8강에서 한국선수끼리 한다는 게 너무 좋았다"고 했다. "처음엔 내가 밀리는 상황이었다. '언니가 이걸 잘하는구나,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내년 아이치·나고야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신유빈-주천희 등이 활약할 대한민국 여자탁구의 밝은 미래가 기대된다는 말에 신유빈은 "저도 한국 여자탁구에 밝은 길이 생겼으면 좋겠어요"라고 화답했다. 이번 대회 현장엔 '후배' 청소년 대표들이 동행했다. 진천국가대표선수촌서도 유·청소년 대표들이 함께 훈련한다. 석은미 여자탁구대표팀 감독은 "유빈이는 가장 오래, 가장 열심히 훈련하는 선수다. 훈련 분위기가 절로 좋아진다. 후배들에겐 그걸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큰 배움"이라고 귀띔했다. 신유빈은 "다른 선수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더 잘해서 더 좋은 결과를 내고 싶다. 특히 주니어 선수들, 어린 선수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중국에 대한 두려움? 그럴 틈이 없어"

왕만유와의 4강전을 앞두고 중국 일부 매체가 신유빈의 중국에 대한 '두려움'을 언급했다. 신유빈은 고개를 갸웃했다. "사실 난 오직 내 플레이에만 집중한다. 두려움이 내 생각까지 지배할 틈이 없다. 경기를 어떻게 풀어갈지만 생각하느라 두려움이 들어올 공간이 없다"고 했다. 1게임에서 줄곧 앞서다 듀스 접전에서 역전 당한 부분, 고비를 이겨내지 못한 부분을 아쉬워하자 신유빈은 "그만큼 상대가 나보다 강한 것이다. 내가 부족한 것이다. 그러니 내가 더해야 한다"고 심플하게 답했다. 중국을 넘은 것, 단식 4강에 오른 것이 기쁘지만 지금 만족할 뜻은 조금도 없다. 신유빈은 "한번 잘한 걸로는 안된다. 계속 변화하면서 좋은 방향성을 갖고 좋은 방법을 계속 찾아가야 한다. 지금 이 방향성이 맞는 것일 수도 있지만 더 좋은 방법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것도 또 해볼 것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내 장점"이라고 했다.

앞으로 남은 목표를 묻자 신유빈은 "가장 앞에 있던 목표가 '스매시 단식 4강'이었는데 이렇게 빨리 될 줄 몰랐다"며 웃었다. "세계선수권, 올림픽 등 메이저대회 단식 메달, 아니 금메달을 목표로 노력하겠다. 파리올림픽에서 동메달 2개를 땄는데 메달색을 바꾸는 게 목표"라며 눈을 반짝였다.

신유빈은 11~15일 인도 부바네스와르서 열리는 2025년 아시아선수권(단체전)에서 또 한번의 포디움에 도전한다. "국가대표로 출전하는 것만큼 영광스러운 자리다.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단체전 주전으로 나서게 된다면 늘 그랬듯 대한민국 대표로서 모든 걸 걸고 최선을 다하겠다. 8강에서 어느 팀을 만나든 승리하고 메달을 따는 게 목표"라고 힘주어 말했다.

▶행복한 탁구선수

신유빈을 둘러싼 모든 환경은 가히 '드림팀'이라 할 만하다. 대표팀엔 '남녀 국대 레전드' 출신의 베테랑 지도자 석은미 감독, 최현진 코치와 '막내 깎신' 서효원 코치, 조민영 의무 트레이너가 있다. 입단 이후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는 소속팀 대한항공엔 '월드클래스 수비 레전드' 주세혁, 김경아 코치가 있고, 대한항공이 지원하는 개인코치 함소리 코치와 김가림 트레이너가 WTT 매 대회 현장에 그림자 동행한다. 스스로를 "운이 좋은 선수"라고 칭한 신유빈은 첫 단식 4강의 공을 헌신적인 스승들에게 돌렸다. "난 함께 한 훈련의 성과를 경기장에서 실행하는 선수일 뿐이다. 플레이는 내가 하지만 뒤에 계신 모든 분들이 나와 똑같이 뛰어주는 느낌"이라면서 "대표팀에 오면 석은미 감독님, 최현진 코치님이 기술적으로 붙어주시고 함소리 코치님은 계속 뭘해야 하는지 연구해주신다. 이 모든 분들의 감사한 노력들 덕분에 좋은 성과가 나왔다. 정말 운이 너무 좋다는 생각을 한다. 어떻게 이런 감독님, 코치님들이 계실까, 정말 대단하시다는 생각을 한다"며 감사를 전했다.

인터뷰 말미, 오랜만에 베이징서 재회한 '땅콩맘' 전지희의 근황 토크도 빠지지 않았다. 지난해 파리올림픽 단체전 동메달 후 은퇴를 선언한 전지희는 슈커 전 대표팀 코치와 결혼해 내년 1월 출산 예정이다. 베이징 인근에 사는 그녀는 대회기간 내내 관중석 1열에서 신유빈과 한국 대표팀을 열렬히 응원했다. 신유빈은 "지희언니가 베이징 도착하자마자 '베이징덕'을 사줘서 언니 덕분에 힘을 내 경기를 잘한 것같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매일 한 시간씩 택시를 타고 와서 선수단에게 두리안, 밀크티, 과일을 사줬다. 언니와 만나니 아직도 선수 때같았다. '언니, 내년에 아기 낳고 또 같이 복식해야 하는 것 아냐? 다시 올림픽 준비해야 하는 것 아냐?' 했다"며 변함없는 우정을 귀띔했다.

'영혼의 파트너' 전지희는 이번 대회 신유빈 '왼손' 작전코치도 자청했다. "단식 첫 경기부터 계속 왼손잡이와 붙었는데, 언니가 '왼손잡이' 리시브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플레잉코치처럼 자세 시범까지 보여가며 알려주더라"며 웃었다. '우주의 기운이 신유빈을 돕는 것같다'는 말에 '긍정의 삐약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너무 감사한 일이 많아요. 운이 좋은 것같아요. 탁구가 재미있고, 매일매일 행복해요."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