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의 가을은 중년 남자를 닮았다. 곳곳에서 만나는 매너와 배려, 그윽한 풍경까지. 가을이 남자의 계절이라면, 가을 남원은 겉으로 감성이 충만해지는 시간을 선사한다. 지리산을 끼고 있어 단풍놀이까지 제격이다. 여기에 하나 더. 입을 즐겁게 해 줄 다양한 음식까지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전통과 현대의 어울림 '광한루원'
남원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광한루원이다. 시내 중심에 자리를 잡고 있으니 우선 접근성이 좋다. 광한루원으로 들어서는 각각의 문은 현대와 전통의 경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 멀리 춘향이가 그네놀이를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오작교 아래로 흐르는 연못은 흡사 은하수를 연상케 한다. 곳곳에 몸을 숨기고 있는 토끼 모형은 달의 궁전인 광한루의 매력에 깊이를 더한다. 화려한 조명에 낮과 밤이 다른 곳, 생동감이 넘치는 만큼 광한루원은 남원의 심장 역할을 하고 있다.
광한루원은 춘향과 이도령이 만났다는 광한루가 있는 정원을 말한다. 누원의 북쪽으로는 교룡산이 우뚝 서 있고, 남쪽에는 금괴같이 보배롭다는 금암봉이 있으며 멀리 지리산이 보인다.
광한루원은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가에 월궁을 상징하는 광한루와 지상의 낙원인 삼신산이 함께 어울려 있는 아득한 우주관을 표현한 한국 제일의 누원이며, 경회루, 촉석루,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4대 누각에 속한다. 광한루원 안에는 광한루, 오작교, 완월정, 영주각, 춘향관, 춘향사당, 월매집이 있고 이외에도 공예품점, 카페 등의 부속시설이 있다. 연지에는 지상의 낙원을 상징하는 연꽃을 심고,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에 가로막혀 만나지 못하다가 칠월칠석날 단 한 번 만난다는 사랑의 다리 오작교를 연못 위에 설치했다. 이 돌다리는 4개의 무지개 모양의 구멍이 있어 양쪽의 물이 통하게 되어 있으며, 한국 정원의 가장 대표적인 다리다. 광한루는 1419년에 지어 1597년 정유재란 때 불타 1626년 복원됐다. 다만 오작교는 처음모습 그대로다. 한편에 작게 있는 춘향사당에는 김은호 화백이 그린 춘향의 영정을 모셔 놓았다.
▶특별한 가을의 마침표 '화인당'
고운 한복을 입고 남원 광한루를 거닐다 보면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멋진 인생샷을 남기고 싶은 분들은 광한루원 바로 옆에 있는 한복대여전문점 화인당을 방문해 보자. '꽃보다 아름다운 당신, 별처럼 빛나는 당신의 취향을 더한다'는 의미의 화인당은 남녀노소 누구나 한복을 입고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종류의 옷과 장신구들을 갖추고 있다. 특히 한복 중 소매가 없는 겉옷인 쾌자도 준비되어 있어 편하게 체험할 수 있다. 실내에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방문객들에게 인기다. 특히 1층에 있는 요요 스튜디오는 요금을 내지 않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 마음껏 인생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사색의 시간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
고즈넉한 가을, 분위기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김병종미술관을 추천한다. 김병종미술관은 숲으로 둘러싸인 전원형 미술관으로 미술작품뿐 아니라 자연을 감상하고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복합문화 공간이다. 남원시에서 직접 운영하는 공립미술관으로 지역 출신 작가들의 전시 공간 마련을 통해 지역 미술의 특성을 알리기 위해 설립된 곳이다. 이름처럼 특히 남원 출신의 김병종 작가가 본인의 대표작을 남원시에 대량 기증하면서 컬렉션의 기반을 갖췄다. 김병종 작가가 기증한 각종 문학 관련 자료들을 선보여, 미술과 문학이 공존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약 2000권의 미술·문학·인문학 관련 도서가 비치된 북카페도 이 같은 미술관의 독특한 역할에 일조하고 있다.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은 김병종 작가의 초기작 '바보 예수'부터 근작인 '풍죽', '송화분분'까지 다수의 작품을 상설 전시와 특별전시를 통해 시민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은 완주 '아원고택'으로 유명한 전해갑 건축가가 감독한 건축물로 미술관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다. 갤러리 곳곳에 '숲멍'할 수 있는 통창이 있고, 미술관에서 바라보는 소나무 숲과 멀리 보이는 지리산 능선, 하늘의 조화가 무척 아름답다. 주변 단풍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 안성맞춤이다.
▶굽이 굽이 단풍의 향연 '정령치'
지리산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 정령치는 가을 무렵 아름답다. 산을 꾀나 아는 사람들은 겨울산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산을 오르는 수고로움을 감내해야 한다. 정령치에서는 수고로움 없이 겨울 못지 않은 아름다움을 간직한 지리산의 풍경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정령치는 높이 1172m로 남원시 주천면과 산내면에 걸쳐 있는 지리산국립공원의 고개다. 차로 이동이 가능하다. 고개 꼭대기의 정령치 휴게소에는 지리산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동쪽으로는 바래봉과 뱀사골 계곡이, 서쪽으로는 천왕봉과 세석평전 반야봉 등과 남원의 시가지가 한 눈에 펼쳐진다. 지리산 주능선 일 백리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명소다.
서산대사 휴정(1520~1604)의 '황령암기'에 따르면 마한의 왕이 진한과 변한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정씨 성을 가진 장군에게 성을 쌓고 지키게 했다는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정령치에서 산행을 시작해 서북쪽 능선을 타면 고리봉-세걸산-부운치-팔랑치-바래봉이 이어지고, 남쪽 능선을 타면 만복대-묘봉치-고리봉-성삼재로 연결된다. 정령치는 지리산에서 차로 넘을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갯길로, 주천면사무소를 출발해 정령치까지 이르는 12km의 코스는 가을 지리산을 만끽하는 최고의 드라이브길이다. 정령치의 북쪽 고리봉은 행글라이딩의 최적지로 알려져 많은 행글라이더들이 찾는다.
▶여름과 다른 시원함 '달궁계곡'
지리산의 계곡은 여름철 시원함에 많은 사람이 찾는다. 그러나 가을 지리산 계곡의 시원함은 여름, 그 이상이다. 다소 쌀쌀한 듯 한 바람이 온몸의 끝을 자극한다. 오감으로 느끼는 시원함, 게다가 주변의 물소리는 귀를 즐겁게 한다. 달궁계곡은 남원시 산내면 덕동길 만수천에 있는 계곡으로 기원 전 350년 삼한시대에 온조왕의 백제 세력과 변한, 진한에 쫓긴 마한의 효왕이 지리산으로 들어와 쌓은 피란도성이 있던 곳이다. 지금도 달궁마을의 주차장 바로 아래에 궁터가 남아 있다. 원래 달궁은 달의 궁전이라는 의미였으나 지금은 궁이 나온다는 의미의 달궁으로 기록하고 있다.
반야봉(1751m), 노고단(1507m), 만복대(1,437m), 고리봉(1305m),덕두봉(1150m) 등 고산준령에 둘러싸인 달궁마을에서 심원마을까지 6㎞에 걸쳐 흐르는 계곡이다. 약 20m 떨어진 곳으로 지리산 종단도로가 지나지만 계곡으로 들어서면 쟁기소, 쟁반소, 와폭, 구암소, 청룡소, 안심소 등 폭포와 소(沼)가 비경을 이룬다.
달궁계곡은 주변 산지의 정상부와는 평균 500-600m의 고도차를 보여 깊은 심산유곡의 형태를 보인다. 남사면은 급한 반면 북사면은 완만한 경사를 유지하고 있으며, 식생이 아주 발달돼 있다. 계곡물이 차고 맑으며 버섯과 나물 등 임산물이 풍부한 곳이다. 넓은 사면과 발달한 식생은 풍부한 수량을 항상 유지할 수 있으며 그에 의한 계곡의 소와 절벽, 반석 등 각종 경관 등이 어우러지면서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낸다. 마을은 산 송이버섯, 산나물, 약초 등의 명산지이며, 노고단, 반야봉, 만복대에 둘러싸인 마을은 민박촌으로 지정되어 있다. 지방도가 남원시 산내면 뱀사골에서 구례군 산동 방면으로 성삼재를 통해 넘어갈 수 있도록 관광 도로화되어 접근성이 좋다.
▶돌고 돌아 쉼터로 '남원예촌 by 켄싱턴'
남원의 가을을 즐기기 위해선 많인 이동거리가 필요하다. 시설보다는 자연적 환경에 따른 볼거리가 많다. 정령치, 달궁계곡만 해도 남원 시내에서 20~30분 남짓 떨어져 있다.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휴식이 필요하다. 이럴 때 방문하면 좋은 곳이 신생마을 꽃단지다. 신생마을 꽃단지는 핑크뮬리와 백일홍, 아스트국화가 만발한 남원의 신생마을은 완연한 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댑싸리, 핑크뮬리, 코스모스, 백일홍 등 다양한 수종의 꽃들이 조성돼 형형색색의 조화를 이룬다.
남원은 낮보다 밤이 아름답다. 광한루원 근처는 밤이면 화려한 조명이 도시 전체를 몽환적으로 만든다. 특별한 숙소도 있다. 남원예촌 by 켄싱턴(남원예촌)이다. 남원예촌은 남원시가 조성한 한옥 호텔로 최기영 대목장을 비롯한 이근복 번와장, 유종 토수 등 대한민국 최고의 한옥 명장들이 직접 시공에 참여해 옛 선조의 지혜와 가치를 살리고 공정마다 혼을 담아 품격을 더하기 위해 오랜 기간 심혈을 기울였다. 스티로폼 등 인체에 해로운 건축 자제를 사용하지 않고 황토, 대나무, 해초 등 자연에서 얻은 귀한 재료로 순수 고건축 방식을 그대로 재현해 더욱 특별한 가치를 더했다. 뿐만 아니라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구들장은 물론, 옻칠로 마무리하여 기품 넘치는 전통의 멋을 간직한 명품 한옥이다.
남원예촌의 한옥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다양한 건축양식을 적용해 한옥의 다양한 매력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연못 위 아름다움을 뽐내는 '부용정'은 백제시대 건축양식인 하앙식 구조로 지어 백제문화의 매력를 고스란히 담았다.
남원예촌은 한옥이지만 호텔급 이상의 편안함과 안락함을 갖추고 있다. 모든 객실은 한옥 전통의 멋에 호텔식 침구로 안락함과 편의성을 두루 갖추었고, 대청이 포함된 객실도 있어 대가족이 와도 편하게 하루를 보내기 좋다. 겨울에는 아궁이에 참나무 장작으로 불을 피워 뜨끈한 아랫목을 경험할 수 있다.
김세형 기자 fax123@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