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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항구 주변의 거리와 선술집에서 하층민·이민자·노동자들의 삶 속에서 태어난 탱고는 유럽 상류층 문화와 대중 예술로 확산하며 아르헨티나의 정체성이 됐다. 지금도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이 춤은 도심 곳곳의 밀롱가와 거리 공연에서 살아 숨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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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는 산텔모 구도심의 탱고 바 '바르 수르'(Bar Sur)를 찾았다. 1967년부터 전통적 탱고 쇼를 이어온 이곳은 현지 매체에서도 '가장 오래된 탱고 하우스 중 하나'로 소개된다.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저녁 식사를 한 뒤 테이블 바로 앞에서 펼쳐지는 탱고를 관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규모가 큰 극장식 탱고 쇼의 경우 무대가 떨어져 있어 몰입도가 높지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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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면에서 남녀 무용수가 손을 맞잡고 무대로 들어서는 순간, '탱고'는 시간을 찢고 현재로 흘러 들어왔다. 반도네온과 피아노 반주에 맞춰 무용수들은 정적과 폭발을 넘나드는 정열을 뿜어냈다. 때로는 그들의 춤사위가 내 머리 위를 훑고 지나가기도 했고, 그들의 땀 내음과 숨소리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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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탱고의 곡선을 닮은 '여인의 다리'
이른 아침, 강물 위로 떠 오른 여명과 함께 다리 아래 고요히 아르헨티나 군함 '코르베타 아라 우르과이호'를 개조한 박물관이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다. 주변 건물들의 불빛이 잔잔한 물결에 반사된다.
주말 오전부터 이 다리는 하나의 무대가 된다. 상아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과 검은 정장을 입은 남성이 다리의 중심부로 나와 탱고 스텝을 밟기 시작한다. 곡이 시작되자, 여인의 흰 치맛자락이 바람에 가볍게 날리고, 남성의 손끝이 허리선을 따라 미끄러진다. 음악에 이끌려 모여든 사람들은 박수로 호응하고, 스마트폰을 들어 순간을 기록한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각기 다른 언어와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그 순간만큼은 남미 감성의 정점인 탱고 리듬으로 하나가 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탱고는 공연장이 아닌 거리에서 살아 있고, 여인의 다리는 그 무대가 된다. 가족 단위 여행자와 산책을 즐기는 노인들이 벤치에 앉아 사색에 잠기고, 젊은이들은 커피를 들고 여유롭게 대화를 나눈다.
◇ 도시의 기억이 살아 있는 산텔모 시장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산텔모는 이 도시의 가장 오래된 지역이다. 스페인 식민지 시대 귀족들의 주거 공간으로 개발됐던 이곳은 19세기 말 황열병 창궐로 한때 쇠락했으나, 20세기 중반부터 예술가와 장인, 음악가들이 다시 모여들며 되살아났다.
매주 일요일이면 이 지역의 중심가인 데펜사 거리는 '페리아 데 산텔모'라는 벼룩시장으로 변신한다. 오래된 잡지와 가죽 공예품, 빛바랜 시계와 축음기 레코드판, 한 세기를 버텨온 듯한 은제 커틀러리까지. 골동품을 비롯해 수공예품과 장난감에 이르기까지, 이 도시의 '시간'이 고객들을 기다린다.
때마침 골목에서 탱고 음악이 흘러나왔다. 셔츠와 청바지 차림의 남녀 여행자가 자연스레 손을 맞잡고 춤을 춘다. 연출도, 장치도 없는 이 장면 앞에서 지나가던 이들이 멈춘다. 이곳 사람들에겐 탱고가 과시할 대상이 아니라, 그저 삶의 일부라는 게 느껴졌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5년 12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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