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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샷!] 악천후에 배달 주문…민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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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수도권 폭설에 배달 주문 놓고 갑론을박
"빙판길 달려보면 목숨 걸고 타는 것과 마찬가지"
vs "악천후에 평소보다 2~3배는 더 벌었다"
새벽배송 이어 '안전할 권리 vs 노동할 권리' 논란

(서울=연합뉴스) 이진주 인턴기자 = "저런 빙판길에는 주문하는 손님들이 죄인이죠."(유튜브 이용자 'nan***')
"배달기사는 자기가 일을 할지 말지 정할 수 있고 안 좋은 환경에서는 프리미엄이 붙는다."(스레드 이용자 'dog***')
지난 4일 수도권에 내린 폭설을 계기로 악천후에 배달 주문을 하는 행위가 '민폐'인지에 대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논쟁이 벌어졌다.
쿠팡 새벽 배송 문제로 노동자의 '안전할 권리'와 '노동할 권리'가 부딪치는 상황에서 악천후 속 배달 주문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가세한 모양새다.

◇ "끌바도 위험하다" vs "배달료 2~3배 벌었다"
배달기사 유튜브 채널 '아빠돈'은 4일 저녁 폭설 현장에서 배달하는 영상을 6일 올리면서 "앱을 켜자마자 배달이 들어왔다"고 밝혔다.
눈이 쌓인 도로에 오토바이를 끌고 나서며 "겨울 이벤트 맵에서 게임하고 있는 것 같다"고 호기롭게 말한 것도 잠시, "뒷바퀴가 돌면서 넘어질 뻔했다"·"지금은 끌바(오토바이에서 내려 끌고가는 행위)도 위험하다" 등 열악한 도로상황에 대한 중계가 이어졌다.
같은 4일 저녁 배달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네이버 이용자 '포***' 씨는 블로그에 "단가가 좋아 5시30분부터 (배달하러) 나왔다"면서도 "자동차도 계속 미끄러지는 마당에 이륜차인 오토바이로 배달을 한다? 이건 사실 목숨 걸고 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적었다.
이어 "라이더들이 집으로 복귀해서 단가가 올라가는 상황"이라며 "3건에 6만원이면 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빙판길을 달려 보면 '이건 목숨값도 안 되는구나' 하고 바로 느끼게 된다"고 덧붙였다.
폭설 다음 날인 5일 오전에도 길이 얼어버린 탓에 여전히 배달은 녹록지 않았다.
경력 1년차 배달기사 조재훈(50) 씨는 8일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4일 눈이 내려 (이튿날 오전에) 길이 꽝꽝 얼어 있었고 결국 길이 너무 미끄러워 배달하다 넘어졌다"며 "팔목과 발목을 접질린 바람에 주말에 일을 못 했다"고 밝혔다.

누리꾼들도 악천후에 배달 주문을 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SNS에는 "난 폭설 폭우엔 라이더들 위험할까봐 일부러 안 시킴"(스레드 이용자 'mir***'), "음식이 먼저인가? 사람이 먼저지"(스레드 이용자 'aer***'), "이런 날 법적으로 배달금지 시켜야 한다"(유튜브 이용자 '현***') 등 안전을 위해 배달 주문을 자제해야 한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그러나 다른 목소리도 들린다.
4일 스레드 이용자 'kre***'가 "얘들아 오늘같은 날은 포장하든가 하고 양심이 있으면 배달시키지 말자. 내 앞에서 배달 오토바이 넘어지는 거 2번이나 봤다"고 올리자 양 갈래의 댓글이 달렸다.
"시킬 땐 분명 눈이 안 왔는데 시키고 20분쯤 지나서 순식간에 쌓여서 너무 미안했어"('jie***') 등 악천후에 배달을 시켜 미안함을 토로한 누리꾼들이 있었다.
반면 "어제 배달해서 평시대비 2.5배는 더 벌었는데 나도 좀 먹고 살자"('gsp***')·"기상 상황 안 좋으면 평상시보다 2~3배 혹은 3배 이상 (배달비가) 더 높아서 원하는 사람은 기상상황 안 좋아도 한다"('pop***')·"왜 실제 배달하시는 분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판단하는지 모르겠다"('dog***')·"배달기사님 얘기도 들어봐야 한다"('ut9***') 등의 댓글도 보였다.
배달기사에게 콜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기 때문에 악천후에 배달을 주문하는 게 민폐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콜을 받지 않을 수 있고, 기상 상황이 좋지 않으면 그만큼 수당을 더 챙길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생 최모(23) 씨도 "(날씨가) 안 좋다고 해서 배달을 안 시키면 결국 그분들의 일거리가 사라지는 셈이 아니냐"며 "어차피 골라서 (콜을) 받으실 수 있으니까 민폐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 새벽배송 논쟁 이어…안전이냐 일할 권리냐
하지만 배달기사의 선택권이 과연 액면 그대로 진정한 선택권인가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배달기사 조씨는 "배달앱이 빙판길에도 라이더에게 터무니 없이 먼 픽업지를 지정한다"며 "5일 오전 인천 주안에서 시작해 부평에서 픽업하고, 상동에 배달하는 콜을 두 건이나 받았다. 안 그래도 먼데 (길이) 얼어서 (콜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한 번쯤은 콜을 안 받아도 괜찮지만 누적될 시 (콜이) 덜 오는 불이익이 있다"며 "어떤 배달앱은 콜 수락률 90%를 유지해야 (배달기사 대상) 프로모션을 누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 새벽배송 하청노동자는 전화통화에서 "눈이 와 길이 막힌 상황에서 (회사가) 배송을 강행하라 했다"며 "안 하면 불이익을 준다는 취지로 얘기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안전할 권리'와 '노동할 권리' 논란은 새벽배송 제한 여부를 두고도 벌어지고 있다. 택배기사의 과로사를 막기 위해 새벽배송을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과 밤샘 근무를 선택하는 노동자의 일할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소비자의 반응도 엇갈린다.
새벽배송은 배달노동자의 안전을 담보로 한 지나친 편의라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지난달 국회전자청원에 게재된 "새벽배송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일상을 지탱하는 중요한 수단"이라는 청원글에 11일 현재 6만5천여명이 동의했다. 청원글이 게재된 지 30일 이내에 5만 명 이상이 동의하면 해당 사안은 국회 소관 상임위에 자동으로 회부된다.

결국 배달기사가 안전하게 배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데 목소리가 모인다.
배달기사 조씨는 "날씨가 안 좋을 때 배달을 시키고 싶다면 가능한 가까운 거리의 음식점에서 시키는 것을 권장한다"며 "배달기사도 조금이나마 안전하게 배달할 수 있고, 소비자도 (음식을) 빨리 받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악천후에) 콜이 잡히지 않으면 (업체에서) 미션을 걸고, 그래도 배달을 안 한다 싶으면 그제야 배달 단가를 올린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션 같은 경우에는 '1시간에 몇 번' 배송하면 보너스를 준다는 개념인데, 상대적으로 (가격이) 세니까 기사들이 위험한데도 불구하고 속도를 내기도 한다"고 밝혔다.
조씨는 그러면서 "기상이 악화하면 미션을 뿌릴 게 아니라 위험수당처럼 (단가를) 더 올리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라이더들이 안전하게 배송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배달앱들은 빠른 배달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라이더의 안전을 우선으로 한 경영 정책을 많이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악천후나 배달 환경이 좋지 않을 경우에는 배달이 무조건 빨리 와야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라이더의 안전을 고려하는 소비자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ju@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