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한국 영화 대표작으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영화상에 도전장을 내민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가 예비후보에 이름을 올리며 첫 번째 산을 넘었다.
아카데미 시상식 주관사인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측은 16일(현지 시각) 내년 3월 열리는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장편영화상 부문을 비롯한 12개 부문 쇼트리스트(Shortlist, 예비후보)를 발표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매년 시상식 최종 후보 발표 전 단편 애니메이션상, 캐스팅상, 촬영상, 장편 다큐멘터리상, 단편 다큐멘터리상, 국제장편영화상, 단편 실사영화상, 분장·헤어스타일링상, 음악상, 주제가상, 음향상, 시각효과상 등 일부 부문 예비후보를 선정해 1차로 발표한다. 각 부문당 10~15편의 예비후작이 추려지는데 이 중 5편의 영화가 선택돼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려 경합을 펼친다.
특히 올해는 한국 영화 대표로 아카데미 시상식에 출사표를 던진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가 예상대로 국제장편영화상 부문 예비후보에 선정돼 국내 팬들의 이목을 끌었다. '어쩔수가없다'는 '다 이루었다'고 느낄 만큼 삶이 만족스러웠던 회사원이 덜컥 해고된 후 아내와 두 자식을 지키기 위해,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켜내기 위해, 재취업을 향한 자신만의 전쟁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병헌,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 차승원 등이 출연했고 한국을 대표하는 연출가 박찬욱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올해 8월 열린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월드 프리미어를 통해 전 세계 최초 공개됐고 지난달 열린 제46회 청룡영화상에서 최우수작품상, 감독상을 비롯해 6개 부문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아카데미 시상식에 앞서 '어쩔수가없다'는 내년 1월 열리는 제83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 뮤지컬·코미디 부문 작품상, 비영어권 영화 부문 작품상(외국어영화상), 남우주연상(이병헌) 등 3개 부문 후보에 선정된 바 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1차 후보 예비후보로는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를 비롯해 아르헨티나 영화 '벨렌'(돌로레스 폰지 감독), 브라질 영화 '시크릿 에이전트'(클레베르 멘돈사 필류 감독), 프랑스 영화 '그저 사고였을 뿐'(자파르 파나히 감독), 독일 영화 '사운드 오브 폴링'(마샤 실린스키 감독), 인도 영화 '홈바운드'(니라즈 가이완 감독), 이라크 영화 '대통령의 케이크'(하산 하디 감독), 일본 영화 '국보'(이상일 감독), 요르단 영화 '당신에게 남은 모든 것'(셰린 다비스 감독), 노르웨이 영화 '센티멘탈 밸류'(요아킴 트리에 감독), 팔레스타인 영화 '팔레스타인 36'(안나마리 자시르 감독), 스페인 영화 '시라트'(올리베르 라세 감독), 스위스 영화 '레이트 쉬프트'(페트라 볼페 감독), 대만 영화 '왼손잡이 소녀'(쩌우스칭 감독), 튀니지 영화 '힌드의 목소리'(카우타르 벤 하니야 감독)가 선정됐다. 1차 예비후보 중 최종 후보로 유력시 거론되고 있는 작품은 지난 5월 열린 제78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그저 사고였을 뿐'과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센티멘탈 밸류',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은 올리베르 라세 감독의 '시라트' 등이 꼽히고 있다. 여기에 재일 한국인 이상일 감독이 연출해 일본에서 10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실사 영화 흥행 1위 기록을 세운 '국보'도 유력한 최종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박찬욱 감독의 1차 후보 선정을 아카데미 시상식의 '그린 라이트'로만 낙관하긴 이르다. '어쩔수가없다'는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유력한 수상작으로 언급됐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부문 수상에 불발되면서 경쟁 부문 초청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여기에 박찬욱 감독은 올해 미국 작가조합으로부터 '파업 기간 극본을 썼다'라는 이유로 회원 자격을 박탈당한 이슈도 있어 여러모로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게다가 박찬욱 감독은 지독한 아카데미 징크스가 있는 국내 감독 중 하나다. 세계 3대 영화제 러브콜을 받는 '거장'이지만 아카데미 시상식의 후보 선정은 단 한 편도 이뤄지지 않았던 것. 전 세계 찬사를 받았던 '올드보이'(03)는 영화진흥위원회와 제작사 간 이견으로 아카데미 시상식 출품에서 누락됐고 '아가씨'(16)도 영화진흥위원회의 졸속 심사로 아카데미 시상식에 출품조차 되지 못하는 비운의 과정을 겪어야만 했다. 우여곡절 끝에 박찬욱 감독의 전작 '헤어질 결심'(22)이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에 한국 영화 대표작으로 출품이 됐고 다행히 1차 후보까지 선정됐지만 최종 후보에서 탈락하는 충격의 이변으로 국내 팬들의 아쉬움을 샀다.
전통적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은 도덕적 메시지가 명료한 영화, 정치·인권·화해·희망의 서사가 담긴 영화를 선호하는데 선악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고 폭력과 욕망을 미학적으로 그리는, 그리고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박찬욱 감독의 작품에 망설이는 모습을 보여왔다. 사회비판적이고 명확한 메시지로 아카데미 시상식의 마음을 사로잡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19)과 다른 행보를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듯 박찬욱 감독의 아카데미 시상식 정복이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어쩔수가없다'가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담은 만큼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분위기는 다를 것이라는 시선도 상당하다. 기존의 박찬욱 감독 연출색과 다른 '어쩔수가없다'에 아카데미 시상식 또한 긍정적인 러브콜을 보내주지 않겠느냔 기대가 이어지고 있다.
'어쩔수가없다'로 기대치를 올린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1차 후보 외에도 주제가상에 한국계 캐나다 출신 매기 강 감독의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도 함께 이름을 올려 관심이 쏠리고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주제곡인 '골든'이 주제가상 예비후보에 선정, 유력한 후보로 전 세계 팬들의 기대를 자아냈다.
한편, 내년 3월 15일 개최되는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최종 후보는 1월 22일 발표된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