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와 인구이동으로 전국에 빈집이 늘고 있습니다. 해마다 생겨나는 빈집은 미관을 해치고 안전을 위협할 뿐 아니라 우범 지대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농어촌 지역은 빈집 문제가 심각합니다. 재활용되지 못하는 빈집은 철거될 운명을 맞게 되지만, 일부에서는 도시와 마을 재생 차원에서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매주 한 차례 빈집을 주민 소득원이나 마을 사랑방, 문화 공간 등으로 탈바꿈시킨 사례를 조명하고 빈집 해결을 위한 방안을 모색합니다.]
세종시 조치원읍 구도심 뒷골목에는 톱날 모양의 지붕을 가진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1927년 건립돼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후까지 30년간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던 잠사 공장으로 사용되다 편물·제지 공장 등으로 활용되면서 조치원의 산업화를 이끈 상징적인 공간이다.
바로 산일제사 건물이다.
톱날 모양인 2개의 비대칭 지붕은 근대 산업화 시대 잠사 공장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산일제사 바로 옆에는 제지공장을 리모델링한 '조치원 1927아트센터'가 자리 잡고 있다. 새롭게 붙여진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제지공장은 산일제사와 같은 시기에 건립됐으며 2022년 복원공사를 마치고 일반에 개방됐다.
두 공장은 별개의 건물이지만 벽이 맞닿아 있어 마치 한 건물처럼 보인다.
한때 지역 경제를 이끌었던 옛 영화를 뒤로 하고 수십년간 흉물로 방치됐던 두 공장은 새로운 공간으로 변모했다.
옛것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새것을 덧붙인 공연장, 전시장, 카페 등 문화공간으로 바뀌었다.
현재와 과거가 하나의 실로 이어진 공간으로 재탄생하면서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월에는 복원을 마친 산일제사의 큰 외벽에 거대한 벽화가 생겨났는데, 전체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드로잉작가 '미스터 두들'(Mr Doodle·본명 샘 콕스·31)은 높이 4m, 너비 20m의 벽면을 거대한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그는 국내 유일의 한글 문화도시인 세종시의 상징성을 담아 세종시민이 사랑하는 한글 25자에 자신의 아이콘을 결합한 대형 벽화 작품 '한구들'(HANGOODLE)을 만들었다.
이곳을 찾은 방문객들이 저마다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한구들은 지역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두 아이와 함께 한구들을 구경한 40대 김모씨는 "100년 전 건물 속에서 유명 팝아티스트 작가의 작품을 접하니 느낌이 새롭다"고 말했다.
지난 9월 산일제사와 아트센터에서 개최된 한글 국제 프레비엔날레에는 5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방문했다. 방치됐던 흉물이 도심 복합 문화공간으로 화려하게 부활한 순간이었다.
여세를 몰아 세종시는 규모를 더 키운 한글 국제비엔날레를 2027년 개최할 계획이다.
산일제사와 아트센터 공간은 전시뿐만 아니라 체험 공간으로도 입소문을 타고 있다.
세종시가 로컬푸드와 미식 관광을 접목한 새로운 관광콘텐츠를 개발하면서 활용도가 한층 넓어졌다.
세종문화관광재단은 지난 10월 산일제사 공간에서 지역 야간 관광상품의 하나인 밤마실과 연계한 미식 세미나를 개최했다.
20여명의 참가자는 지역 청년 기업가가 빚은 전통주를 활용해 만든 칵테일과 이 지역에서 수확한 곡식·과일로 만든 음식을 음미하며 색다른 경험을 맛봤다.
이들은 "장소, 시간, 구성 모두 알차게 즐겼다", "극진한 대접을 받는 느낌을 받았다",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은 경험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앞으로 산일제사와 아트센터를 중심으로 상설 전시가 확대되면 원도심 일대에 퍼질 온기는 더 뜨거워질 것으로 세종시는 기대하고 있다.
김려수 세종시 문화체육관광국장은 "산일제사와 1927아트센터는 세종시 원도심의 귀한 근현대 문화유산이자 집적화된 핵심 문화시설"이라며 "지역 문화예술인에겐 활동 공간이 되고 원도심 주민들에게는 문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글 프레비엔날레에서 입증됐듯 좋은 콘텐츠를 준비하면 관람객이 모일 수밖에 없다"며 "흉물로 방치됐던 건물을 복원해 생기를 불어넣었듯 사람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지다 보면 침체한 구도심 경제에도 생기가 돌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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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